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찢어 버린 상장

[도서] 찢어 버린 상장

박신식 글/서민정 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꽤나 유명한 책인데도 좀처럼 읽을 기회를 놓쳤던 책이다. 제목만 눈여겨 보다가 보다가 읽지 못하거나 뒤늦게 읽고서 새삼 감동을 받은 책이 있는데, 내겐 이 책이 바로 그 책이었다.

  상장은 어떤 의미일까? 초등시절에는 워낙 받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받아도 그닥 감동이 덜 하긴 하지만, 올림픽으로 치면 금메달을 비롯해서 시상대까지 오르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상장의 의미가 그저 스팩쌓기 마냥 맹목적으로 취급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처럼 상장이 지닌 의미가 퇴색해 버린 것은 나름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상장 따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 만드는 것도 어린이들을 서릿발 같이 냉정한 무한경쟁의 논리 위에 놓는 일이니 바람직하지 못하고, 반대로 누구나 다 받는 흔한 상장이 되어버리면 열심히 노력한 어린이에게 진한 감동을 주지도 못할 테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한편 책 속 줄거리에는 또 다른 문젯거리가 속닥거린다. 바로 상장타기에 개입하는 어머니와, 비록 이 책에선 두드러지진 않지만, 그런 현실을 조장하는 우리 교육계의 병폐적인 모습 말이다.

  이 책 속에는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며 상장을 독식하는 어린이가 등장한다. 현실에도 그런 어린이들이 많은 형편이니 이런 설정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부러워하면서도 상장 한 번 타 본 적이 없는 주인공도 등장한다. 모든 설정값이 기본을 넘지 못하는 쪼랩 캐릭이 점점 성장하면서 고수가 되어가는 설정은 수많은 아동문학의 기본이고, 이 위대한 성장드라마가 제법 깊은 감동을 주기 마련이니 딴죽을 걸 까닭이 전혀 없다. 그런데 모든 대회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싹쓸이어린이가 1등을 놓치고 단 한 번도 상을 타 본 적이 없는 주인공이 상장을 타는 이변이 일어난다. 아주 자연스런 전개이며 제법 감동적인 장면이기에 흐믓하게 읽어 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왕따를 하는 어린이들이 등장을 하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어머님이 개입을 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더니 교사는 그런 어머님에게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더구나 진상조사를 띄엄띄엄하는 것 같더니 결말은 상장을 찢어버리는 것으로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린다. 아무리 단편이야기라하더라도 맥락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빠른 전개로 이야기를 끝마쳐버리면 어린이들에게 왕따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딴에는 요즘 세대에는 이런 왕따현상이 너무나도 흔하게 이루어져서 그닥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지 의아스러우면서도 당혹감을 멈출 수 없었다.

  거기에다 싹쓸이어린이의 어머님이 개입을 한 다음 상황에 대한 설명도 미흡하고, 담당교사가 문제가 일어났을 때는 자리를 비웠다가 결말에 갈등을 해소할 때에야 등장하는 설정은 어린이의 문제를 어른의 문제로 크게 부풀리는 또 다른 문젯거리이고, 발생한 문제를 덮어버리고 서둘러 해소해버리는 이야기 전개는 다소 황당스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짜릿했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타낸 상장을 스스로 찢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인정 받지도 못할 상장 따위는 필요없다는 주인공의 대사는 진정한 상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똑똑히 전달하는 멋진 행동이었다. 더욱 감동적인 장면은 주인공의 정정당당한 행동에 함께 동참하며 진정한 상장의 의미를 되새기는 어린이의 등장이었다. 비록 현실에서는 정의로운 행동을 불나방의 무모한 행동에 비유하고 말아버릴지라도 진짜 멋진 사람에게 뜨거운 박수를 칠 줄 아는 더 멋진 장면의 연출이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결과만 좋다면 방법이 어떠하던 수단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는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말이건만 씁쓸한 뒷맛을 감출 수 없는 속담으로 들리곤 한다. 요즘에는 비슷한 용례로 복불복이라는 말이 있는데, (예능의 재미만 있다면) 나만 아니면 누가 골탕을 먹더라도 다 괜찮다는 의미로 읽혀서 역시 개운치 않은 말로 들리곤 한다. 이 말들이 어른들이 비겁한 변명을 할 때 자주 쓰는 말임을 우리 어린이들이 알고는 있을까? 왕따문제 역시 나만 아니면 된다는 논리로 방치 되는 건 아닌지 걱정 된다. 특히 어린이들이 자주 보는 이야기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너무 흔한 소재로 등장하며, 어차피 쉽지 않은 문제이니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있는듯 없는듯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가볍게 취급하는 건 아닌지...


  높은 파도일수록 피하면 배가 뒤집히기 십상이다. 파도를 정면으로 맞서야만 배가 뒤집어지지 않는 법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