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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삼국지 세트

[도서] 이문열 삼국지 세트

나관중 저/이문열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드디어 완독을 했다. 다 읽고 난 소감은...이문열의 필력은 대단했다는 정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익숙한 책이라 내용면에서 새로울 것도 없겠거니와 역시나 다 알고 있는 2000여년 전 역사 인물이 전하는 메시지가 그렇게까지 감동스러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완독한 까닭은 우선,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끝내 다 읽지 못했던 책이었기 때문이었고, 둘째, 이문열이 피력했던 <소설 삼국지>를 써야만 했던 까닭이 내게는 <소설 삼국지>를 읽어야만 하는 이유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끝으로 어릴 적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삼국지 속의 인물들이 펼치는 역사적 매력을 불혹을 넘긴 나이에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적 독해력이 문외한 수준인 독자로서 조심스레 풀어본다는 전제를 밑밥으로 깔고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이문열은 이 책 <평전 삼국지>를 내면서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의 차이점을 부각하며 <소설 삼국지>속에서 심할 정도로 치우친 '촉한정통론'을 벗어나 나름 균형잡힌 <삼국지>를 쓰려 한 듯 싶다. 대개의 <소설 삼국지>들이 유관장 3형제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이끌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유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위나라를 세운 조조의 세력이나 장강(양쯔강) 남쪽에 자리 잡은 오나라의 손씨 왕국에 비추어도 왜소한 세력으로 보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문열은 '촉한정통론'이라는 대세를 거슬러서 후한말의 혼란을 극복하고 각지의 영웅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위촉오 삼국시대가 정립되었고, 그후 '삼국시대'를 종횡무진하던 인물들이 물러나고 그들의 후예들이 후임을 이어 갔으나 결국 위나라의 삼국통일과 사마씨로 이어진 진나라가 건국되기까지의 거친 역사의 흐름과 흥망성쇠를 보여주고 싶었던 듯 싶다.

 

  '촉한정통론'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자면, 역사적 승자는 삼국 가운데 위나라인데도 호사가들은 망국의 끄트머리에 불과할 정도로 초라한 촉나라에 깊은 애정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 때문에 <소설 삼국지>가 역사적 사실과의 먼 거리가 돋보일 정도로 '유비'를 호의적으로 평가한다는 점, 또 그로 인해 역사적 왜곡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유비'에게 관대한 점 따위가 '촉한정통론'의 문젯거리로 대두가 된다. 그래서 한 때는 <소설 삼국지>의 관점을 유비에서 조조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도 만만찮게 대두되었으나, 지금은 다시 유비를 정통으로 보는 시선으로 되돌아 가는 판국이다.

 

  그렇다면 '왜?' 조조가 아니고 유비가 사랑받는지 아니 물을 수 없다. 출신배경으로 본다면, 조조는 환관의 양자이고 유비는 한왕실의 후예다. 얼핏 보면, 조조보다는 유비에게 유리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록 조조가 환관에게 입적된 양자임에도 대대로 한왕실에 충성을 다한 명문가의 자제인데 반해 유비는 왕실의 후예라고는 하나 돗자리나 짜서 팔아 근근히 입에 풀칠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던 거렁뱅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사가들은 여기에서도 조조를 밉게 보고 유비를 좋게 볼 근거를 찾고 있다. 조조가 대대로 한왕조에 충성을 바쳐왔던 신하임에도 결국 한나라를 멸망시킨데 반해, 유비는 그 기초는 미약하지만 끝내 촉한을 세워 끊어진 한왕실의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한고조였던 유방의 행보와 오버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는 간신배에게 놀아난 왕실의 무능과 정책의 혼선으로 끝내 나라를 혼란스럽게 했으며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그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조조의 행보에 정정당당함을 부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도 한나라가 망하고 위나라가 들어서는 과정은 크게 무리가 없어보인다. 대개의 왕조가 그러한 부침을 겪으며 흥하고 망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한왕실에 충성을 다했던 신하들이 대다수 조조의 편을 들어 위나라를 건국하였다고 해서 '역적'이라는 타이틀로 매도할 수 없을 것이다. 고려말 정도전이 이성계와 손잡고 새나라 조선을 세운 것처럼 이미 망조가 든 나라를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는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개국공신인 정도전도 마지막까지 고려의 충신으로 남은 정몽주의 인기를 사그라들게 할 수는 없었다. 오죽하면 훗날 조선의 왕들조차 끝까지 충성을 다한 정몽주를 드높이는 까닭은 비록 적일지라도 '주군을 향한 충정과 충심'만은 부럽고 또 부러웠던 까닭일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서민일지라도 '변치 않는 절개와 지조'는 수많은 가치관 가운데 으뜸으로 꼽을 정도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동양적인 정서관은 망할지라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경향과 시기와 때에 따라 제 이익만을 챙기려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기에 '촉한정통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이기에 비교적 초반부터 강력했던 조조와 지리적 이점으로 힘을 기르기에 유리했던 손책-손견-손권으로 삼부자보다는 변변한 세력도 이루지 못하고 소수의 인물들이 '의리' 하나만으로 똘똘 뭉쳐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유비 일행'의 모습은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삼기에 딱 적당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소설 삼국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제갈량'이다. 제갈량 또한 '유비쪽 사람(촉한정통론)'을 내세우다보니 그가 살면서 실제로 쌓았던 업적보다 훨씬 부풀려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바람조차 자기 편에게 유리하게 바꾼다든지, 스스로 움직이는 운반수레를 만든다든지, 또 신출귀몰한 진법을 사용해 아군을 구해내거나 적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전설 따위가 실제 그의 능력인지는 둘째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을 능히 해낸다는 점에서 '신격화' 시켰다는 점을 비난하는 호사가들도 있는지라 '허구의 영역'이 아닌 '역사의 단편'을 본다는 점에서 <소설 삼국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과학이 발달하여 전설적인 인용구에 혹할 독자도 없으니 <소설 삼국지> 속에서 보는 제갈량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소설 삼국지>에서 초반부에는 '유관장 3형제'가 나오지 않으면 잘 읽히지 않는 것처럼 후반부에는 '제갈량'이 나오지 않으면 그닥 재미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소설 삼국지>를 잘 보면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유비쪽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고, 또, 다른 인물의 시간과 분량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반면에 '유비쪽 사람들'의 이야기는 길게 늘이고 또 늘여서 천천히 흐른다는 점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소설 삼국지>에서 독자들이 읽고 싶은 것은 '유비네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나관중을 비롯해 글쓴이들은 간파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삼국지> 속의 다른 인물들을 재조명한 책들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또, 다른 작가가 쓴 <삼국지>는 어떤 맛일지도 궁금해진다. 이문열은 '어쩔 수 없이' 유비네 사람들 이야기로 썼지만, 분명 다른 나라, 다른 작가의 손에서 쓰여진 <소설 삼국지>는 또 다른 맛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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