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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를 몇일 전에 다녀왔다. 특별하게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번도 안 가본 곳이라서,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가볍게 다녀왔다.

 

 내가 일반적인 역사로 배운 것이, 웅진은 산속에 있어, 수비하기는 쉽지만 발전하기는 어려워, 사비로 천도하였다고 알고 있었다. 가보니까 공주에서 부여는 별로 멀지 않았고, 공주는 시인 반면에 부여는 시 승격이 되지 않았다. 그냥 조그마한 도시이고 조용한 곳이란 인상이었다. 수학여행 온 친구들만 없었으면 별로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부여박물관과 정림사에서 본 것 몇가지만 정리해서 기억시켜 놓고자 한다.

 

 1. 백제금동대향로

     금을 잘 다스리는 나라가 신라이고, 신라의 금관을 생각하였는데, 신라 금관에 비교할 수 있는 금세공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울러 국립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반가상이 생각났다. 백제가 만만하지 않는 나라임을 알 수 있다. 크고 화려하다.

 

 

 2. 사택지적의 비

     의자왕 시절 사택지적이 정계은퇴를 하면서 쓴 비라고 한다.


          甲寅年正月九日奈祇城砂宅智積 (갑인년정월구일내기성사댁지적)
          慷身日之易往慨體月之難還穿金 (강신일지역왕개체월지난환천금)
          以建珍堂鑿玉以立寶塔巍巍慈容 (이건진당착옥이립보탑외외자용)
          吐神光以送雲含聖明以 (토신광이송운아아비간함성명이) 

         『역주 한국고대금석문』(1992)에 번역문

“갑인년(甲寅年) 정월 9일 내기성(奈祇城)의 사택지적은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은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 금을 캐어 진귀한 집[珍堂]을 짓고 옥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寶塔]을 세우니, 그 높디높은[巍巍] 자애로운 모습은 신령스런 빛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그 우뚝 솟은[] 자비로운 모습은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어…….” 

  3. 정림사 석탑

      사비성 한가운데 절이었을 것 같은데,지금도 부여시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탑만 하나 남아있다.


       탑신에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 내용을 탑에 새겨넣었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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