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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의 비극

-       한겨레 신문의 칼럼을 읽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2222.html 

 

 카이스트 문제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학생의 자살과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 잘 연결 지을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 신자본주의에 물들어 등록금을 학점에 따라 차별화하여 지급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이고, 연대가 아닌 경쟁으로 모는 풍토가 과연 바람직한 교육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나는 졸업정원제 시절의 학생이였다. 전두환 시기인 5공 시절에 반영된 것으로, 대학교를 입학정원과 졸업정원으로 나누어 실시하던 시절이었다. 초기에는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내가 다녔던 학교는 130% 뽑았던 것 같다. 그래서 졸업정원이 50명인 과의 경우에는 65명의 학생을 뽑고 나중에 50명만 졸업시키는 제도였다. 내가 들어갈 때는 115% 57명을 뽑았던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과에는 1명을 제외한 56명이 졸업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정확하게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남학생의 일부가 군대에 가게 되므로 연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자가 많은 학과, 그리고 당초 목표가 130%가 너무 힘들었던 학과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누군가는 경쟁에서 누락하여 공부를 잘함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못하게 되는 상태가 생겼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80년대의 3저시대 고성장시대에서 이런 일이 필요했을까 생각한다. 지금 세대에게는 미안하지만 졸업하면 취직은 자동인 시대였다. 하지만 졸업정원제는 이 풍요의 시기에도 경쟁으로 몰고 목을 조어고 있었다.

 

 카이스트의 비극은 뭘까 생각해본다. 3.0이 평균인지는 알 수 없지만, 130%에서 30%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불가피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30%에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카이스트도 3.0이하의 학생이 반드시 생길 구조인 것 이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꼴찌를 할 수 있고 순서가 뒤일 수가 있다. 하지만 부적격자라고 낙인 찍기에는 너무 성급하고 잔인하지 않는가!

 

 내가 대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제일 먼저 사회문제에 고민하게 된 사건을 이정우 한겨레 칼럼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역시 난 그저 운이 좋을 뿐이라고 감사한다. 카이스트 문제가 뭔지 똑바로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학생 제대로 교육시키는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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