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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

[도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

유홍준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규슈라는 곳이 일본 중심지에서는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우리나라와는 지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부산에서 배를 타고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야요이 시대

 일본의 조몬 시대이 후 야오이 국의 중심지는 큐슈로 보인다. 이후 아스카 나라 시대로 가기 전까지 큐슈가 지리적인 이점으로 한반도로 부터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 문화의 중심지이고 출발점으로 볼 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당진으로 통하는 곳의 지명이 존재하는 것 처럼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절로 보인다. 당연히 도래인으로 불려지는 한반도의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도착하고 문물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벼농사에 대한 것도 전해 주었을 것이다.


백제의 친교 및 멸망

 다른 한반도의 국가와의 외교 관계도 존재했지만, 백제와 일본의 왕실은 긴밀한 관계였다. 그래서 교통로상의 위치하여 백제 왕의 전설에 대한 부분이 남아있다. 백제 왕이 탄생한 것이 그 지방의 자랑이긴 하겠지만 굳이 찾아가서 볼만한지는 모르겠다.

 백제의 멸망은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변화이다. 나당 연합군과 백제의 전투에 있어서 백제의 편을 들고 결국 패해버린 일본은 다시 중국(당)이 쳐들어 오는 것을 준비해야 했다.(이 후 원과 고려 연합군의 침입이 있고, 서양 이양선이 나타나는 것이 모든 외세의 침입의 다인 것 같다.) 그래서 거의 최전방인 규슈에서는 그에 대한 준비로 수성과 대야성을 볼 수 있다. 수성은 물로 막을 것을 생각한 것은 지리적으로 어쩔수 없었다고 보는데 특이하긴 하다.

망한 백제왕의 후손들이 큐슈의 2군데에 따로 떨어 정착하게 된다. 한쪽인 아버지와 장남이 공격을 당할 때 차남이 그곳을 방문하여 도와주고 돌아간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역시 백제와 가까운 큐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도자기

 임진왜란 당시의 큐슈는 일본의 전초기지였다. 나고야와 이름이 동일한 큐슈 북부에 나고야 성을 개발하였다. 지금은 빈터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로 무수한 조선의 도공들이 끌려야 여기에서 일본 도자기 문화를 꽃 피우게 된다.

이책에서도 나오지만 끌려온 도공들은 주로 남부지방(경상도 혹은 충청도)에서 끌려온 중앙의 기술자가 아니라 (관요) 지방 기술자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도공을 기술자로 대하는 문화가 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계급도 사농공상의 사족에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자기보다 일본의 자기가 더욱 발전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전문 도자기를 수출하는 단계로 가게 된다.

도공중에는 신이된 도조 이삼평을 들수 있다. 충남 어디서 끌려왔지만 일본에서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양질의 백토를 구하고 백자를 만들어낸다. 후에 도공 집단의 노력끝에 좋은 자기를 만들어내게 되고 최초의 지도자 이삼평은 도조 이삼평의 명예를 얻고, 신사에 모시는 신이 된다.그래서 많은 부분이 도조 이삼평과 도자기 터와 조선인 마을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한편으로 여자 도공 백파선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근대 큐슈

근대 일본의 개화에 사쓰마번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삿초동맹으로 사쓰마 번과 조슈번도 모두 정치잭으로 유력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도 근대 개화기의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 현)의 인물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이건 따로 일본 근대사를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서 임진왜란 조선에서 끌려온 대표적인 두개의 길이 소개된다. 하나는 심수관 일가로 현대식 도자기 가문을 계속 이어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 정치 가문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일본 이름 도고 시게노리가 그렇고 그 가문은 명문가로 가고 있다. 2차대전 전범재판 때 심수관씨가 도고 시게노리에게 면회를 갔다고 하니, 사실이라면 흥미로운 일이다.


결론

 큐슈가 일본 지리적으로 중심은 아니고 우리로 보면 전라도 정도의 위치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평안도에 비교하는 것이 맞아 보인다. 정치의 중심은 아니지만 외적의 최전방이고 문물을 받아들이는데도 가장 가까운 위치이다. 그리고 하나의 섬이지만 남한의 40% 정도에 면적으로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큐슈 자체는 볼만한  불교 문화의 사적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한일 관계에 유적지는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이 직접 당으로 가기 어려운 고대 시대에는 한반도와 큐슈 혹은 일본 본토와는 아주 밀접한 관계이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전초 기지 혹은 끌려온 조선인이 살아가는 터전으로 우리에게는 관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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