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을 짓고 사람이 그것을 누리는 것 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지어지고 나면 그 순간부터 건축물이 사람의 행동과 일상을 강제한다.
선배건축가가 '건축가는 건축주의 생각을 품고있다가 낳아주는 대리모'라는 이야기를 했다.
존경하는 이 선배의 말이 온전히 와닿지 않는 것은 그 '건축주의 생각'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저열한 경우가 많아서 그럼 그냥 시시하고 못생긴 아이를 대신 낳아야하나 라는 의문 때문이다.
원하는 건축물을 낭비없이 시행착오없이 지어내고자 함은 이견없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정보도 많고 사전 준비도 치밀해지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그 원하는 건축물이라는 것 자체가 박약한 생각과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면 결과가 시시할 가능성 100%
알맞은 재료, 형태, 시공방법...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의 폭을 넓히기 쉽고 조금만 찾아보고 공부해도 유연하게 생각을 바꾸기도 하지만 집 그 자체에 대한 관념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가들도 아예 그런 것을 입에 담지도 않고(그래봐야 논쟁이 붙고 시간은 늘어지고 경제적인 손실만 생기고 무엇보다 대부분 결국엔 설득이 안되니까) 건축주의 의도를 간파한 후 그가 원하는 구성에 자신의 디자인을 보태서 살갑게 들이댄다.
내가 즐겨하는 비유로(이놈의 비유병;;)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근사한 커피문화를 즐기고 싶다고 방법을 물어오긴했지만, 커피 배전하는 방법, 원두를 가는 기계, 드립퍼..이런 설명에 기겁하고는 인스탄트 커피의 편리함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커피믹스 보관함에 진주를 박아넣는 일과 근사한 커피잔을 소개해 주는 일이다. 그러고나면 진주가 아니라 다이아을 박아넣어도 결국에는 보람은 적고, 뭐 맘대로 하라그래 돈이나 챙기자 싶다.
인스탄트 커피도 좋다.(건축가들은 인스탄트 커피를 보다 잘 즐길수 있게 무지하게 연구한다.)
하지만 여유가 있어 커피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겠다면서도 이것을 고집하면 답답해진다. 커피를 깊이있게 즐기게 되면 번거롭게 보이던 추출과정을 조금도 생략하고 싶어하지않게된다. 그 과정이 있어 더 좋기도 하다.
흔히들 말하는 '편리하다'라는 의미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타락시킨다'와 동의어는 아닌지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원하는 집에 그치지말고 그 이상으로 내 생활과 인생을 고양시켜줄 수 있는 집이 무엇인지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깊이 생각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집이 나를 만든다.
물론 그 이전에 자신의 생활과 인생을 고양시켜줄 요소가 뭔지 찾아야만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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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뭔 개소린가 싶은 분들을 위해서(사실은 내가 쓰고도 횡설수설 같아서)
즐겨보는 일본 주택관련 잡지에서 본 인상적인 집을 우선 하나 소개합니다.


대지가 60평정도 -197.96㎡(59.88坪)-
건축물 연면적은 1,2층 20평씩 모두합쳐서 40평이 조금 넘는 -142.18㎡(43.0坪)- 그닥 크지않은 주택입니다.
건축주는 자신의 집에 도서관 공간이 있기를 바랬습니다. 현실은 크지않은 대지와 한정된 건축비.
하지만 집안에 근사한 도서관 공간이 있습니다. 어떻게 한 것일까요. 건축가가 재주를 부린 것이 아닙니다.
현관을 아주 크게(1층 공간의 절반이 넘게) 만들고 그곳에 현관을 겸하는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대신 2층의 거실과 식당 주방의 면적이 현관과 같고, 방들은 무척이나 작습니다.
이렇게 생긴 도서관 공간은 도서관과 현관의 기능 뿐만이 아니라 손님을 맞이하는 리셉션공간도 되고 작업실 ,오피스 기능도 겸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2층의 거실과는 다른 성격의 동적인 거실공간이 됩니다.
평면구성도 사실 꼭 보지않아도될 만큼 평범합니다.(도면은 잡지에서는 봤는데 인터넷에서 못찾아서 못올림;;)
이렇듯 간단합니다.
건축주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앞으로 원하는 일상을 정확히 알고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또 그 이외의 것을 포기할 용기가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