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의 기록- 大腦(대뇌)와 性器(성기)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는가. 황지우의 시를 처음 접한 스무 살 무렵 느낀 당혹을 기억한다. 그 시절에 황지우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생경함,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비애’와 ‘달콤한 우울’, ‘삶에 대한 희망’을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시라고 여겼던 순진한 생각은 황지우의 이 시집으로 무너졌다. 광고와 신문기사, 수첩에 적은 낙서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두서없는 단어들의 나열, 모호한 숫자와 기호들의 조합들은 '장난'처럼 여겨졌다.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는가. 스스로 답하기까지는 세월이 더 필요했다. 몇 번의 사랑이 '장난'처럼 끝난 후 나는 학교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시집들을 읽으며 내면에 고인 마음들을 정리하는 연습을 수없이 해야만 했다.
황지우를 다시 읽은 것은 그 시기였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고 시작되는「뼈아픈 후회」라는 시. 그 시를 거듭 읽으며 하루를 보냈던 그 날, 나는 당혹스러웠던 황지우의 첫 시집을 다시 펼쳤다. 난해했던 황지우의 첫 시집을 다시 해석해보고 싶었던 것. 그러나 다시 읽은 시 속에는 복잡한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이 있었다.
신문기사와 광고, 극장의 대한 뉴스를 보며 읊은 황지우의 시들은 아픈 삶과, 그것을 살아내야만 했던 시인의 나약함과 오기, 시대에 대한 불만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시인은 “1972년: 대학에 입학” 했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강림하던 순간”들을 겪으며 20대를 보낸다. 감옥과 군대로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은 “1979년: 대통령이 죽고”, “모두, 한꺼번에 돌아”(「활엽수림에서」)온다. 80년대를 맞이하며 그는 시인이 되었지만(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광주에서 시작된 어둠은 시인을 ‘침묵’(「묵념, 5분 27초」: 실제로 이 시는 빈 칸 뿐이며, 5, 27 이란 숫자는 광주항쟁이 진압 당한 날짜와 같다)으로 몰아간다.
80년대는 더 짙은 어둠이었지만 사람들은 어둠에 조용히 익숙해져 간다. 여전히 학살의 현장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광고가 나오지만 그것을 읽는 화자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심인」)눈다. 사람들은 대한뉴스가 나오는 극장에서 “애국가를 경청”하고 “각각 자기 자리에 앉”(「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고, 남루한 회사원은 “미스 리와 저녁식사하고 영화 한 편”(「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어느 날」)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시인의 눈에 세상은 비극과 기만으로 직조되었으며 사람들은 “大腦(대뇌)와 性器(성기) 사이에”(「이준태의 근황」)에 흔들리는 저울추와 같이 다가온다.
자의식 없는 자들의 기만적인 삶.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자학 때문일까. 시는 시종일관 어둡고 냉소적이며 서정시의 문법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형식을 파괴한다. 황지우의 첫 시집은 환멸을 통과한 자의 읊조림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흑백복사기와 흡사하지 않을까. 시인의 내면에 비친 세상과 인간은 한없이 단조롭고 우울하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에 박힌 풍경들을 희망의 다른 이름으로 명명한다. 환멸을 토한 언어의 나열을 읽으면서 나는 갈 곳 잃은 마음을 시에 담아 정리하려는 부질없는 생각을 ‘정리’ 했으므로.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를 구속했던 풍경에서 벗어났다. 정직한 환멸의 기록은 낯선 풍경을 환기시킨다. 그 낯설음은 지금-여기의 삶이 기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심어주며 자신과 풍경 사이에 ‘거리’를 형성시켜준다는 사실을,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는가. 망설이지 않고 답하리라. 이것도, 아니 이런 것이 좋은 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