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제목을 만났을 때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라는 동화를 떠올렸다. 그 동화는 정말 그 의문을 풀어가는 동화였지만, 이 소설에서의 제목은 작가의 소녀적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표현하는 문장이었다. 작가가 말했듯 그 감정은 단순한 향수만으로 치환될 수 없는, 서울에 대한 지겨움과 주위 여타 환경에 대한 부적응 등의 감정이 뭉쳐 고향을 하나의 노스텔지어로 만든 복합적 감정이었다. 작가가 서울에서 고향을 떠올리며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남아 자신 대신 즐겼을지를 생각해보며 느꼈을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떤 사람이든 과거 혹은 가닿지 못했던 순간들을 이상 속에 남겨두고 그리움에 사무치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노스텔지어는 언제나 스무살로 돌아가는데 작가처럼 생각해보면 정말 싫은 요소들도 눈에 띄이지만 내가 이상으로 설정한 순간 그 요소요소들은 흐린 눈이 가능하다... 작가가 지속해서 순간순간을 훗날 인용했던 인용문을 펼쳐놓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작가에게는 그 당시 고향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이 소설을 쓰던 훗날에는 결국 그리워하던 순간마저도 이상적 시점이 된 것이 느껴진다.
또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의 범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이 정도의 자기몰입력과 끝임없이 인용되는 작가의 소설들. 작가 스스로도 전혀 모른 척 할 생각이 없는 서술들을 봤을 때, 이 소설이 에세이라고 말해도 전혀 의문을 가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자전적 '소설'로 이 책을 출판한 것은 수많은 디테일에 있는 듯 하다. 아무리 좋은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시절을 흐르듯 기억해내지는 못한다. 작가는 자신이 기억하는 순간들을 소설을 쓰던 시점에 실로 꿰듯이 말로 엮어냈고, 그 과정에서 진짜가 아닐 수 있는 창작의 기억들이 첨가되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작가도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고 명명한 것 아닐까?
작가가 어린날의 일대기를 쭉 그리듯 읊어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올케가 시집오던 그 장면이었다. 어린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호감어린 시선도 좋았고, 얼마 전 그림으로 본 개성의 혼례복이 너무 아름다워보였던 기억도 있어 가장 선명하게 훅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후 올케의 비극을 생각하면, 이 소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실화여서 이렇게 표현하기가 죄송스럽지만, 개인 블로그인만큼 책을 읽었을 때 느낀 점을 그대로 적어보고싶다. 당대 로맨스와 비극, 허무주의의 발로로 비극적 사랑이 유행하듯 번졌는데 올케와 오빠의 사랑은 또 어찌 아다리가 잘 맞게 그리도 비극적이었을까? 병을 알고도 사람에 빠진 부부의 예견된 비극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해방정국에서 만난 개인적 비극은 마음이 참 아팠다.
해방 정국을 말하고보니, 수없이 배웠던 해방전후의 분위기가 실상 개인적 경험으로 보자면 많이 달랐던 듯하다. 아마 배경이 시골이자 어린 학생의 눈니어서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르지만 적대적 분위기만이 흐르던 것도 아니지싶다. 이런 면에서 미시사가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이 정말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그 당시 누가 다 먹었을까? 아니면 싱아도 완서를 기다리며 풀죽어가지는 않았을까? 경험하지 못한 순간이 조금은 아쉽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