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수도지만 오래된 동네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폐지를 주우며 생활하는 한 여성 노인이 등장한다. 북아현동에 몇번 가보았지만 유리될 만한 어떤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냥 내가 살던 이문동과 다르지 않는 느낌의 오래된 서울 동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듯한 행색이었지만, 그 행색이 싫지 않았다. 그 곳에서 '가난한 노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해 읽기 전까지.
사실 북아현동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완전히 다른 동네로 이사온 이 순간에도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나는 차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순간에나 그들을 인식해왔다. 나같은 사람들로 인해 세상과 유리되어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한 여성 노인의 삶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가난하려 작정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 세상이 손에 쥐어준 여러 일들을 성실하게 살아냈다. 그럼에도 결국 폐지를 주워 생활을 연명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들이닥친다. IMF가 온 것이 사실 그들과 진짜로 무슨 상관이겠는가.. 지금 성인이 되어 세상을 관망하며 살아가는 나도 그런 거대한 흐름에서 전혀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마다 가난이 턱밑으로 차오르는 것 같다. 가난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한국에서 너무도 쉽지 않기 때문에 어쩔 때는 꿈을 꿀 정도로 두렵다. 그런데 누군가는 내가 느끼는 가상의 두려움을 현실로 안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노력과 가난이 정말 신빙성있는 조합인가 싶을 때가 있다. 노력하지 않은 자는 가난을 달갑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오랜 시간 '공부'라는 수단을 통해 가난을 등지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세상은 가난한 자를 반기지 않으며 소소한 행복만을 찾게 만든다. 그래서 내 기준에서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노력한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네는 정말 성공하면 안되지. 그건 불공평이지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그러나 이 비난은 타당한가?
가난의 문법은 가난의 조건을 다른 말로 풀어낸 듯 하다. 국민국가 내에서 살아가면서 '가난'마저 특정한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나의 가난함이 확인받을 수 있다. 가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국민국가이다. 국가의 돈을 받기 위해서 나의 가난을 공증받아야한다니.. 나의 경우 한부모가정임을 공증받는 과정이 너무도 짜증나고 치사하여 이를 포기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폐지줍는 일들을 비롯한 가난한 노인들이 행할 수 있는 일을 노동으로 간주하고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얼만큼 인정받는 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한다. 이런 생각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에 놀랄만큼 나는 무지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머리에 불이 켜진듯한 느낌이었다. 정책에 대한 부분도 너무 궁금하다. 작가님의 속편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