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소설이다. 하지만 읽기전까지 왜인지 모르게 피리 부는 사나이로 착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펼쳐진 예상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에 놀랐다.
소설은 전시에 아이들은 운송하던 비행기가 섬에 추락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유아들과 소년들은 본능적으로 그들만의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남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랠프를 지휘관으로 삼았다. 랠프는 다시 지위를 잭에게 나눠주며 섬을 탐험하고, 구조신호를 보내고, 오두막을 짓기로 계획을 세우지만 마음대로 계획은 진행되지 않는다. 아직 아이들은 저마다 하고싶은게 넘칠 때이고 그들을 모두 통제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결국 그들은 한번의 구조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아이들 간의 갈등은 가시화된다.
이들 사이의 갈등이 결국 구조와 사냥으로 가시화되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문명과 야만의 분기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랠프가 사회를 구조화하며 일종의 계획을 착실히 쌓는 과정은 문명과 사회의 구조를 이야기하고, 잭이 사냥 하고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는 과정은 야만으로 보인다. 이들 사이으이 극도의 대립은 ‘공포’라는 매개체를 통해 극대화된다. 섬에 존재할 수도 있는 어떤 ‘짐승’에 대한 공포는 전투기가 추락하는 과정에서 섬에 떠내려온 군인의 시체를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더욱 커다한 가상의 공포로 자리잡는다. 시체를 밤에, 그것도 대장인 랠프와 잭이 목격하고 도망친지라 아이들의 내면 깊숙이 무서운 짐승으로 자리잡았다. 그럴수록 랠프는 더욱 구조에 희망을 걸고, 잭은 멧돼지 사냥을 통한 광기로 극복하고자 한다. 잭은 잡은 멧돼지 고기를 매개로 하여 많은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스스로 대장이 된다. 얼굴과 몸에 분장을 하고 소리지르고 춤을 추는 것으로 공포를 이겨내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포를 통해 제의는 힘을 발휘하게 되고, 무리를 돈독하게 하지만 외부에 대해서는 하나의 광기로 자리잡는다.
파리대왕의 후기를 보면 모두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골딩이 소설을 쓴 기저에 대해 무엇보다 뚜렷한 색채가 떠올랐기 때문에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문명과 야만의 대비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선함과 악함으로 바꿔말하는 골딩의 언어는 너무나도 오리엔탈리즘 그 자체이다. 20세기를 강타한 사회진화론이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 문명과 야만이 선과 악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 알고 있다. ‘아이들’이라는 대상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서양의 선함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끝까지 이 소설은 나에게 ‘불편함’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소설이 여태까지 살아남아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읽힌다는 점에서 슬프다.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이름 하에 한계가 명확한 책들이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 고전소설에 서양작가의 책들이 많은 것이 결국 골딩이 말하는 ‘서양의 문명’의 힘을 말하는 듯 싶어 가끔 고전을 쳐다보기조차 싫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