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나 뇌과학에 대한 딱딱한 책일 거라고 생각하며 펼쳤다. 그러나 책은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안나는 소설의 등장인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나가 기차에 몸을 던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것은 톨스토이도 모르고, 만약 안나가 실재하는 인간이라 안나에게 직접 물어본다 해도 알 수 없다.
저자의 문학 언급은 일회성 비유가 아니다.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즉석에서 창작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즉각적으로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내면에 명확한 동기가 있다고 착각하지만 행동이 선행하더라도 누군가 물으면 언제나 그럴싸한 대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실험 결과들은 직관에 반하는 것들이다. 뇌량 분리 환자는 오른눈에 보여준 단어에 기반하여 그림을 선택했지만 그에 대한 이유를 묻자 왼눈에 보여준 단어를 활용해 대답했다. 또 시각 무시 환자는 시야의 절반을 완전히 무시하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신경생물학 교과서에서 위의 예시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피험자들이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뇌의 신경 손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즉석에서 적절한 해석을 찾아내려는 뇌의 성질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로 인식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인간의 내면에 아주 깊은 무언가가 있고 우리의 행동은 너무 깊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각은 프로이트 학파에 의해 강화되었다. 그러나 '무의식'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정신분석학의 발전을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완전히 성공한 적이 없다.
저자의 주장대로 뇌가 즉석 설명 날조 장치라면 왜 우리는 대체로 일관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소설의 등장인물이 뜬금없는 행동을 하면 사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까? 컴퓨터에 데이터를 저장하듯 불변의 원칙이 저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뇌는 선례를 기억한다. 이전에 한 행동, 들어본 적 있는 단어, 체스판의 배치 등을 기억하고 비슷한 것을 마주치면 빠르게 회상할 수 있다. 그리고 뇌는 자신이 이해한 것만 기억할 수 있다. 여기서 이해는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영단어를 잘 외우기 위해서는 재치있는 문장으로 만들어 외우라는 것과 같은 팁들은 이미 흔하다. 하지만 이해가 단순히 암기를 돕는 것이 아니라 이해 없는 암기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새로울 수도 있겠다. (불규칙한 숫자를 정확하게 암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책에서 그러한 예시는 다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뇌가 완전히 선례를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간다. 뇌는 불규칙해 보이는 문양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는 것처럼 비약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음이 평평하다는 주장은 인간의 사고에 깊이가 없고 따라서 분석하거나 예측할 수도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인지과학계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서 인간을 조종하는 무의식을 찾아 헤매는 대신 인간이 특정 방식으로 반응하는 패턴과, 창의적인 비약이 발생하는 조건들에 대해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려고 하는 메시지도 희망차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무척 감동적이다.
"마음이 평면이라면, 우리가 마음과 삶과 문화를 상상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감동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또 현실로 이뤄낼 힘을 지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