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출처]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사라진 공간이 품었던 이야기들.|
초등학교3학년 해질녘 저녁 먹기 전 출출해진 나. 집 앞 슈퍼로 슬리퍼를 끌고 곧장 내달린다. 주머니엔 딱 과자 한 봉지 값이 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슈퍼 아줌마에게 인사를 건네고 여유 있게 뒤쪽 과자 진열 코너에 자리를 잡는다. 내가 취급하는 단골 과자 친구들은 모두 나를 생각해서인지 주로 내 눈높이에 맞춰져 있거나 별도 여분은 선반대 진열 없이 박스째 바닥에 내려놓기 때문에 서성이다가 선택의 시간이 길어지면 이제 쭈그려 앉는 단계가 온다. 주로 잡는 친구들은 양 많은 스낵류........ 짭조름한 새우깡, 바디감이 풍부한 자갈치, 달콤하고 끈덕한 고구마깡, 고소한 감자깡.... 근데 이 아이들은 생긴 건 달라도 우리처럼 자매지간이나 형제는 되나 보다. 뭔가 닮은 듯 다르다. 3개는 까끌해서 많이 먹으면 입천장이 까이고 1개는 깨가 이에 낀다. 그래서 간혹 얘들도 슈퍼 아줌마 없을 때 우리처럼 친하다가 봉지 끄덩이 잡고 싸우는 상상을 해본다! 그럼 누가 첫째고 서열은? 거기서 생각은 끊기고 몸을 틀어 (이 친구들은 조금 더 매너가 필요하다 혼자일 때는 좀 새침해진다) 우유가 있는지 꼭 확인했어야 할 초콜릿 우유 만드는 죠리퐁. 정말 인디언이 먹을 거 같은 인디언밥.... 얘들은 그냥 국적이 달라서 말이 안 통할 거다.. 도무지 싸우는걸 못 봤다. 난 그렇게 한 가지씩 먹어보는 몽상에 빠지느라 다리에 쥐가 나서 콧등에 침을 바른다. 20분... 아줌마가 부른다. "아직도 못 골랐어? 아줌마가 골라줘?" "아뇨."
이제 고통의 시간이다. 나는 지린 다리를 손으로 짚고 엉거주춤 일어 섰다 폈다를 반복했고 맘속으론 비장한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20여분 끝에 휘어잡은 고뇌의 결실인 그 과자 한 봉지는 단순한 과자 한 봉지가 아닌 것이 되었다. 이제 그건 내 앞길이 되리라. 내가 선택한 과자를 내가 당당히 조우할 수 있을 만큼 무엇인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나한테 질문하면서 나 스스로가 알아버리고 말았던 것들? 나만의 수업 속의 로케이션을 하기에 슈퍼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당분간 그 누구에게도 비밀에 부쳐두는 게 좋겠다... 그날 나는 20여 분 만에 깡으로 끝나는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집을 향해 걸었다. 왜 그 많은 시간을 서성였는지, 또는 그게 왜 힘들었는지, 왜 그런 것들은 노력해야 했던 것인지를..... 걷는 내내 처음으로 나란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걸었으며 내가 이 큰 우주에 한 점이고 별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