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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도서]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함정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작가를 따라 그곳으로 갔고, 홀린 듯 걸었다
#태양의저쪽밤의이쪽 #함정임 글 사진 #열림원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어느 곳은 의도적으로 찾아갔고,
어느 곳은 우연히 눈에 띄어 발견된 곳이었다.
_p.22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헤밍웨이의 시카고, 킬리만자로, 아바나, 파리

사람이나 사물, 어떤 대상을 향해 깊이 파고드는 이들이 가진 에너지는 주변도 환하게 만든다. 책 표지에 그려진 차창 너머로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이 펼쳐진다. 창에 비친 여인의 옆모습이 수면 위에 드리운 그림자 같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 듯하다.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은 시와 소설을 고루 탐독하는 문학 애호가이자 덕질에 진심인 편인 함정임 소설가의 여행에세이 겸 독서에세이다.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작가와 작품 주인공의 여로를 따라 현장에서 답사하고 쓴 스물네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태양처럼 눈부신 작가들을 따라 떠난 여정이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헤밍웨이, 모파상부터 오사무와 도스토옙스키까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작가들의 창작 현장에서 마주한 매혹적인 순간의 기록이다. 저자는 세계문학 현장기행이라고 했지만, 이 책은 문학 덕후의 순례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낯선 세상 속으로 떠나는 것이 삶이 되어버린 것은 지도 찾기의 설렘과 황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는 내게 미지의 언어이고, 소설이고, 삶이다. _p.335 에필로그

시간을 초월한 만남에서 포착한 글과 사진이 된 기록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이 책은 문학의 바다를 여행하는 지도다. "작가와 작품에 새겨진 지도의 흐름을 따라간" 여정에 담긴 설렘과 기대는 묘한 중독을 일으킨다. 지도를 따라 찾아간 그곳에는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저자가 소개하는 작가와 작품, 문장과 여행지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름만 아는 작가와 처음 알게 된 작품이 꽤 많았다. 가보지 않은 낯선 세상 이야기가 펼쳐져 자꾸만 미지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작가의 꿈을 안고 파리로 건너와 오직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쓰기 위해 나날을 바치던 작가 지망생 헤밍웨이의 창작혼이 깃든 성소였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파리, 내 청춘의 도시, 우리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다"고 술회했는데, 이 문장은 카르디날르무안 거리 74번지 벽에 새겨져 있다.
_p.43 헤밍웨이 소설의 성소, 파리 카르디날르무안 거리 74번지

카르디날르무안 거리 74번지는 파리에 찍힌 헤밍웨이의 수많은 족적 중 저자가 가장 기리는 곳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가와 작품을 따라 걸으며 점을 잇듯 공간을 연결한다. "모두 누군가 스치듯 살다 간 곳들이다.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도 하다." 흔적은 그대로 추억이 되고 공백은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작가와 작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에 가깝다.


1922년 피츠제럴드가 "새로운 - 놀랍고, 아름답고, 단순한, 거기에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을 쓸 결심으로 착수한 이 소설은 경장편에 속하는 얄팍한 분량이지만 출간까지 사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개작 수준으로 초고를 완전히 다시 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_p.59-60 위대함의 출처, 개츠비의 탄생

피츠제럴드는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가 보낸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을 참을 수 없이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빨강, 하양, 그리고 파랑 아래 Under the Red White and Blue』로 바꾸라는 전보가 출간 전에 전해졌다면 『위대한 개츠비』는 다르게 기억되지 않았을까.


누군가 고독이 원인이 되어 소설을 쓰고, 누군가 권태가 원인이 되어 소설을 읽는다. 고독이든 권태든 하루하루 소설을 쓰고, 소설을 읽는 행위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구, 모험이다. 미지의 세계는 '기억'에, 모험은 '여행'에 관계된다. 세상 어떤 소설도 이 두 가지, 기억과 여행을 근간으로 삼지 않는 것은 없다.
_p.85 기억, 현기증, 여행의 감정들
: 모디아노의 파리와 제발트의 외국

'기억의 예술가'로, '21세기의 프루스트'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파트릭 모디아노. 그가 쓴 "회상으로서의 소설 또는 기억으로서의 소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이어진다. "시간은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이 시간과 공간은 바로 기억과 불가분의 관계다."

프루스트가 기억을 더듬어 묘사해놓은 소설의 풍경 속으로 홀린 듯 걸어 들어갔다. 글과 사진을 보며 상상만 하다가 실제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여러 번의 시도에도 끝까지 읽지 못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번에야말로 '스완네 집 쪽으로'를 지나 끝까지 읽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까지 생긴다.


누군가는 기억이 원인이 되어 소설을 쓰고, 또 누군가는 여행이 원인이 되어 소설을 쓴다. 기억이든 여행이든 소설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사랑, 실험이다. _p.90 여행의 환각, 제발트의 『현기증』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더해진 소설을 이야기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끌림에서 생겨난 불꽃. 깊이 파고들어 심연에 닿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시도 중 하나가 소설이 아닐까. 작가와 작품들에 멈춰버린 시간이 함정임 소설가를 통과하고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다.


소설은 세계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소설은 세계를 혼합하고 또 포용하기 때문입니다.
_p.260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중에서

"문장을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축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라는 문장에서 소설가 함정임의 문학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진다. "소설이 줄 수 있는 것. 소설이라는 장르가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다가간 여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만드는 소설'이다." 한강의 소설 『흰』에 관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소설을 읽고 나누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의 세계를 품고 있는 소설을 사랑하는 일은 곧 소설을 쓴 작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그날 이후, 아름다움이란, 작품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어낸 사람, 곧 작가 그 자체임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쫓는 것이란 일종의 병임을 깨닫게 되었다.
_p.329 생生의 바다, 쪽배의 환각
: 김채원과 나, 정릉과 광화문 사이

이 책은 "평생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을 눌러쓴 고백이다. "누군가의 문학이 비롯되는 원형들, 삶이 문학이 되는 진실한 힘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가 "무엇인가 마음속 들끓는 것을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세계"에 닿고자 했던 간절함이다.

삶이 곧 문학이 되는 글쓰기와 애도란 무엇이지. 이 책에는 상상만 했던 일을 실천으로 옮겨 글로 풀어낸 저자의 정성이 넘칠 듯 출렁인다. 작가와 문학을 향한 사랑이 흘러넘쳐 길을 만들고 새로운 지도를 그려냈다. 미술관에서 친절한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처럼, 여행지마다 추억을 나누듯 작가와 작품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와 함께한 여행길이 달콤한 핫초코를 마신 것처럼 따듯하고 행복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열림원(@yolimwon) 감사합니다. @yes24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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