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뮤지컬은 우리 인간 삶의 이야기를 드라마, 음악, 춤, 무대 등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며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기 위한 표현 활동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의 제목을 ‘뮤지컬 인문학’으로 삼을 만하다. 뮤지컬에는 작가, 연출가, 작사가, 작곡자의 생각,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미술, 문학, 역사 등 다양한 인문 분야가 접목되어있다. 그래서 뮤지컬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하는데 깊이를 더할 수 있다.(p.46) 뮤지컬의 무대 배경에 명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이 뮤지컬과 관련이 있는 이유인 것이다. 어쨌든 뮤지컬에서 배우가 부르는 노래, 무대 배경으로 쓰이는 명화, 줄거리의 기본 틀이 되는 고전 작품 등 모두 공감이라는 인간의 근본 감정을 통해 인문학과 연결되어있다. 저자는 서강대학교 최진석 교수의 인문학 정의를 소개하고 있다. 인문학은 ‘사람(人)이 그리는 무늬(文)를 추적하고 분석하여 그 무늬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학문’이다. 이때 무늬는 사람들의 활동이 나타내는 큰 흐름, 맥락, 시대정신, 이데올로기 등의 의미로 일반화 될 수 있다.(p.84) 이 정의는 뮤지컬과 인문학이 만나는 최소한의 근거를 만들어 준다. 그럼 간단한 뮤지컬의 역사를 알아보고 아울러 몇 개의 뮤지컬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미국에서, 민스트럴, 벌레스크, 레뷰, 보드빌이 주류가 되어 미국 고유의 음악극인 뮤지컬의 태동하였다. 이는 미국 자본주의의 개념을 탑재한 상태로 간단한 대사, 음악, 춤 등으로 재밋거리를 제공하여 유럽의 오페라와는 차별화 되었다. 이후 쇼보트라는 작품이 효시가 되어 본격적인 북 뮤지컬이 등장하였다. 1940~60년대를 통해 뮤지컬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어 오클라호마, 회전목마, 남태평양,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나타났다. 아울러 오페레타 형식과 함께 고전이 바탕이 된 쇼 스타일로 작품의 다양성을 꾀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 키스 미 케이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가씨와 건달들의 작품이었다. 이 시기는 완성도 있는 드라마와 멜로디가 강조된 아름다운 음악에 춤과 위트가 어우러져 하나의 멋진 예술 무대가 정착되는 시기라 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는 뮤지컬의 격변기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코러스 라인, 카바레, 시카고, 컴퍼니 등의 뮤지컬이 등장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불균형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뮤지컬에 록 음악이 뮤지컬 음악으로 가세함으로써 창작의 한계를 넓혔으며, 연출가들이 새로운 시도로써 기존의 것과는 차별화된 무대를 제공했다. 1980년대부터는 뮤지컬산업화 시대가 열리며 영국 뮤지컬의 습격이 시작되어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벨, 미스사이공 등이 나타났다. 영국에선 올리버, 달과 6펜스 등 몇 안 되는 작품만이 성공한 상태였지만 80년대에는 글로벌 마케팅을 통해 쇼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깊이 있는 음악, 관념적인 주제, 화려한 무대를 무기로 미국보다 한 발 앞서 갔다. 그러자 선두주자 격이었던 미국은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았다. 작곡가 손드하임이 미국 뮤지컬의 자존심을 지켰다. 50년대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사를 시작으로 60년대 누구나 휘파람을 불 수 있지, 70년대 컴퍼니, 스위니 토드, 80년대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 숲속으로, 90년대 암살자들로 미국 뮤지컬의 지평을 확장하였다. 그의 뮤지컬은 콘셉트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확립했고 미국 뮤지컬의 미래를 밝혀주었다. 이어서 몇 개의 뮤지컬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록의 이름으로 써 내려간 20세기 에반게리온이며 인간 예수를 볼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예술에 대한 관용을 바라고 있지만 기독교인인 나에게 거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좋은 것 같다. 굳이 변명이 필요할까? 2. 카바레: 북 뮤지컬을 성운(星雲)이라 한다면 콘셉트 뮤지컬은 별과별을 관계 지어서 만든 별자리라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시작이 카바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콘셉트 뮤지컬에서 작품에 쓰인 원작의 심한 변형이 저작권자의 불만을 가져올 수 있기에 저자의 권력이 새로운 위치로 이동함을 볼 수 있다. 저자의 죽음에서 독자의 탄생으로. 3. 지킬 앤 하이드: 저자는『이기적 유전자』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은유를 들어 이 뮤지컬을 설명한다. 하이드를 유전자에 빗대어 계속해서 유전되어가는 속성처럼 ‘난 네 안에 영원히 살아’를 노랫말로 외치고 있다. 4. 빌리 엘리어트: ‘가난한 자가 가난 한 자를 돕는다.’라고 써진 부제(副題)는 탄광촌 사람들이 빌리의 왕립학교 발레 오디션을 위한 경비를 모금하는 장면에서 이해가된다. 5. 미스사이공: 철저한 서구의 눈으로 써진 이 뮤지컬은 당연하게도 베트남에서 막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뮤지컬을 냉전이 쏘아올린 마지막 불꽃놀이로 보고 있으며 이미 사라져버린 냉전이라는 가치관이 물리적 죽음을 맞이했다면 베트남 호치민 시에서 이 뮤지컬이 상연됨으로써 냉전이 비로소 두 번째 죽음 즉 사회적 죽음으로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6. 레미제라블: 빅토르위고의『레미제라블』과 칼 마르크스의『공산당 선언』은 시대정신이 부합되는 작품이었다. 다만 People를 국민, 민중, 인민 중 어느 걸로 번역하느냐 차이일 뿐이다. 두 작품 다 뮤지컬의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라는 노래가 주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다. 7. 라이온 킹: 동물 캐릭터가 무대 위에 떴다. 가면을 쓰면 발음도 어색하고 표정도 안보이고. 이러한 문제를 ‘변화와 혁신’이라는 틀에서 배우와 동물 캐릭터를 일치시켜 해당 동물의 개념을 연상시키는 인문학적 발상이었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추상적 사고’였다.
이 책을 통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를 구분지울 수가 있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절대왕정과 민족국가를 거치며 주류세력으로 등장한 특정계층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과 신화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오페라의 소임이었다. 오페라는 근대의 시대정신과 이데올로기를 상연하는 도구로 우리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오페라가 푸치니의 죽음과 함께 20세기 초에 소임을 다했으며 그 시대정신을 이어가는 음악극이 현대 뮤지컬이다. 음악은 ‘언어의 진화적 부산물’-스티브 미슨의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p.85)이니까. 아울러 뮤지컬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작품 내에 들어있는 인문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