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긴박한 느낌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첫 부분과는 대조적인 전개였다. 시작은 많이 지루했다. 대충 읽어도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주인공인 유진인데 여러 각도로 반복되는 살인 장면은 주인공 유진이 혹시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지루했다. 작가가 의도한 구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비슷한 전개를 가진다고 느꼈다. 듣기로는 다윈은 새로운 이론인 진화론을 주장하기에 앞서, 완벽한 주장을 위해 그 당시 유행했던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로 1부를 도배했다고 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지루한 내용이지만 저자 다윈에게는 자신의 주장을 위한 안전장치를 앞부분에 배치한 샘이다. 다른 결이지만 이 소설의 저자는 확실한 반전을 주기 위한 장치로 1부에 해당하는 앞부분에서 일부러 지루한 전개를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부터 전개되는 숨 막히는 내용에 1부의 지루한 전개가 용서되는 느낌이었다. 소설가의 전개는 역시의 나의 상상을 뛰어 넘는구나 하고 감탄을 하며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끝 부분에서 해진까지 죽이면서 살아남는 주인공, 악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유진을 보면서 함께 살아온 어머니의 양아들 해진의 존재를 되 집어 보았다. 죽은 형(정확히는 유진이 죽인 형) 유민의 재현이 아닐까? 유진에게는 항상 방패막이 되면서 같이 있어왔던 존재였지만 어렸을 적 종탑에서 형을 죽이면서 되 뇌였던 말(‘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거야’)이 마지막 부분에서 해진에게 하고 있는 말이 아닐까? 어쨌든 온 가족을 몰살시키는 악의 화신을 보면서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 악을 생각해보았다. 우리 인간은 살인자의 후예들이니까. 아주 오래전 우리 호모사피엔스에게 법의 테두리가 씌어 지기 전에는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였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는 경쟁자인 네안데르탈을 멸종시키고 그들 호모사피엔스의 후손만 남겼을 것이다. 그 후손의 역사 속에서는 정복전쟁을 통해 상대방을 멸절해버리는 장면도 많이 등장하니까.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주인공 유진 같은 소위 프레데터가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