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꽂혔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가진 책이라도 마케팅 측면에서 제목을 잘 지어야한다. 그래야 좋은 내용이 독자들에게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 더 나아가 저자 김상욱 박사에게 한 번 더 꽂혔다. TV를 통해 익숙해진 것 같지만 저자와 나는 일면식도 없다. 다만 그의 박식에 반하고, 그의 의식과 동행하고픈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제목에 인간이 들어있어서 인간에 대한 고찰로 시작될까 기대되었지만 역시 저자는 물리학자였다. 책의 전개는 어김없이 원자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약간의 실망감에 목차를 다시 살펴보니 인간에 대한 고찰은 책의 끝부분에 배치되었다. 물리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저자가 쉽게 설명해준 덕분에 내가 물리학을 잘 이해한다는 착각 속에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본다.
1부- 원자는 어떻게 만물이 되는가? 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인간까지도 예외는 없다. 그렇다.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4원자(수소, 탄소, 질소, 산소)뿐이다. 죽으면 다시 원자로 돌아가 다른 물질의 일부가 될 뿐이다. 참 허무하다. 그러나 허무함에서만 그친다면 우리가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죽으면 원자로 돌아갈 뿐이니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한다. 비록 원자로 구성되었을지라도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 이제 한 번 읽어서 물리학을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책에 나열된 몇 가지의 법칙을 나열해본다. 파울리의 배타원리(원자호텔을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물리를 안 배운 나로서는 다른 선생님들도 원자호텔의 비유를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기율표의 비밀, 수소· 탄소· 질소· 산소이야기, 원자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과 일상 세계를 설명하는 뉴턴역학 등 모든 이야기를 원자호텔의 예로서 설명하였고 그렇기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파트를 통해 약간의 지식을 넓힐 수 있었지만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화학무기로 인한 죽음이었다. 화학무기 중 염소가 폐로 들어가 조직손상을 일으켜 죽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더 나아가 조직손상 그 자체로 죽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액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폐부종으로 죽는다. 엎어 치나 메치나 같은 말이지만 정확한 경위는 다르다.
2부- 별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지구상의 대부분은 무생물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무생물을 밟고 서있다. 그 중에서도 산소를 밟고 서있다. 지각을 이루고 있는 많은 광석이 산소 결합물이기 때문이다. 분명 수소가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산소를 언급하는 것은 수소는 가벼워서 우주로 날아가 버리고 질소는 대기 중에 75%를 차지하고 있으니 지각의 주요 일원이 될 수 없다. 여기서는 결정호텔의 예를 들고 있다. 결정은 원자들로 구성된 기본 단위구조가 반복적으로 배열된 것이다.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달라진다. 마치 일반 광물이 되느냐 수정· 오팔·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의 귀금속이 되느냐 하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이 형성되는 것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면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올까? 별이다. 여기에서 별은 태양을 말한다. 당연하다, 우리는 태양계에 살고 있으니까. 태양의 핵융합에 의해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원자들이 가지고 있는 핵력이 가장 안정적인 철(26번)이 될 때까지 핵융합이 된다. 이때가 되면 태양은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고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은 보지 못할 것이다. 태양의 나이는 100억년으로 과학자들이 계산하고 있으니까. 이 과학자들이 원자를 이해한 덕분에 컴퓨터, TV, 플라스틱, 스마트폰, 합성세제, 인터넷, 형광등 등의 신기술이 우리 주변에 상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원자마저도 원자핵과 전자로 나뉘고, 또 원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뉘고, 쿼크라는 기본입자(페르미온, 보손)로 이루어진다. 너무나도 복잡해진다. 역시 물리학은 어려워서 근처에도 못가겠다. 하지만 지구 자기장이 지구로 들어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차단하고 있어 지구 표면에서 원자가 쪼개지는 일은 없을 것이니 원자를 물질의 최소 단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3부- 생명 우주에서 피어난 경이로운 우연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무생물들이 존재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지구에만 생물이 있다. 곧 지구에는 많은 무생물과 조금의 생물이 있다. 우리 주변의 무생물이나 생물이나 똑같이 원자의 집합체인데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르다. 왜일까? 생물은 자기복제와 항상성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유지 기능이 다하면 죽음이라는 자연 현상을 맞이한다. 이 유지 기능을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 행위가 광합성과 호흡이다. 그중 호흡은 결국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이루어지니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성 공장이라 할만하다. 생명은 원자로 만들어진 화학 기계이다. 생명의 자기 복제를 위해 DNA가 중요하고 이 DNA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tRNA를 비롯한 여러 가지 RNA와 함께 많은 과정들을 설명하는 가운데 결론은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다. 이해가 잘 안되고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말이다. 언젠가는 내 생각이 이 말에 대해 긍정으로 바뀔 날이 올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자기복제를 하는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났고 현재와 같이 진화 했을까? ‘최초의 이름 모를 생명체 > 세균 > 원핵생물 > 진핵생물 > 다세포생물 > 해면동물 > 자포동물 > 양서류 > 파충류 > 포유류’ 이러한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이 포유류는 단공류, 유대류, 태반류로 나뉜다. 이 중에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어류, 조류 공룡 등이 빠졌지만 이들이 진화되어 포유류가 된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로 멸종해버린 공룡의 자리를 포유류가 대신한 것이다. 이 포유류 중 완전한 형태의 새끼를 낳는 태반류 영장목의 동물 가운데 하나가 인간이다. 그런데 많은 부분이 ‘~이다’가 아닌 ‘~일 것이다’로 표현된다. 저자가 물리학자라 ‘~일 것이다’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할 여지가 있다. 내가 우연의 산물이라니?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중세시대에 종교에게 과학이 먹혀들기가 쉽지 않았겠다. 그러나 지금은 중세시대가 아니다. 언젠가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는 내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4부- 느낌을 넘어 상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수많은 인류화석 들이 나타났으나 현존하여 남은 것은 호모사피엔스다. 오늘날의 인간은 호모사피엔스다. 그리고 이도 역시 자연과 동일한 원자로 구성되어있다. 인간은 필요에 의해 모여 살게 되었고, 인지혁명으로 인해 뇌가 커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허구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이 허구가 인간 집단을 지속 발전시켜 주었다. 오늘날의 국가와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보이지 않는 많은 시스템들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었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인지혁명이 일어난 후 인간의 뇌는 현생인류와 비슷한 크기로 커졌다. 바로 이러한 뇌의 크기 때문에 인간이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생명체와 구분을 짓게 되었다. 생각은 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인간 뇌의 구조를 연구해 만든 것이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에게도 생각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대답은 모른다. 정보 처리의 면에서 보면 인간의 뇌나 인공지능이나 튜링머신(컴퓨터)이나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특별하다.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인가? 아마 생각을 바탕으로 한 문화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동물도 생존에 유·불리를 따진 유발된 문화를 가질 수 있지만 인간만이 고도의 공감, 모방, 언어소통 능력에 의한 전달된 문화를 가진다. 이것이 인간이 특별한 이유이다.
원자부터 시작하여 인간까지의 단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었다. 물리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서 과학 전반에 걸쳐 인간과 과학과의 연관관계를 잘 설명하여 나에게 쉬운 척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기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그리고 뇌리에 남아 있는 부분만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고등학교 때 배우는 과학의 네 분야를 차례대로 설명하는 것 같았다. 물리, 화학, 지학, 생물. 저자가 물리학자라 그런지 처음 원자 부분은 조금은 이해되는 듯했다. 재미있었다. 화학 분야가 이어지는 듯 했고 여기까지는 저자의 박식함에 매료되면서 나도 이 지식의 향연에 동참하고 싶어서 열심히 읽어나갔다. 이어서 나오는 부분에서 지질학 생물학을 설명하는 기분이었다. 나의 흥미도 점점 약해지면서 빨리 책을 마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고찰인 마지막 파트에서 다시 흥미를 가지며 좋은 추억으로 책장을 덮을 수가 있었다. 어렵지만 좋은 책을 읽었다. 물론 저자는 어렵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