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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도서]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김민정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재테크 책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잘난척과 가르치려 드는 꼰대 말투에 지친 사람
읽는 이를 기혼주의자라고 전제하는 오조 오억개의 부동산 책에 환멸 느낀 사람
알티 타는 트윗이나 친구들 수다처럼 재미있는데 유익한 내집마련 썰을 듣고 싶은 사람
당장 김민정 작가의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를 읽어 보시라! 

 



 나는 아직 서울 근처의 신도시 엄마 집에 얹혀 오손도손 살고 있는 큰딸이다. 엄마와 지내는 생활은 대체로 즐겁다. 그러나 언젠가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면, 혹은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원치 않아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스스로의 주거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평소에도 주거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지만 내가 살 곳을 자가로 마련하는 건 고민의 범주에 없는 선택지였다. 물론 최종 목표는 내 명의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최소 한 채는 갖는 것이었지만 근 10년 안에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월세와 전세를 생각하다보면 어지러웠다.

 

'프리랜서 PD인 내가 저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수입이 많이 줄었는데 목돈이 묶여 있었다면 이 시기를 버틸 수 있었을까?

 

서울에서 활동하느라 자취하는 친구들이 꽤 많은 월세와 생활비를 지출하고, 목돈을 보증금으로 저당 잡히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에 더 두려웠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유튜버가 1인 2묘님이고, 이번에 그분이 쓰신 책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가 출간되었다. 1인 2묘님의 영상은 모두 챙겨 보았고, 여러번 돌려 봤다. 잔잔바리로 들어간 자막이 너무나 웃긴 브이로그 영상도 좋지만, 비혼여성의 내집마련 시리즈를 가장 인상깊게 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리즈를 통해 1인 2묘님을 알게된 분이 많을 것 같다. 혼자 쌓은 내적 친밀감으로 인해 1인 2묘님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책을 받아 보고 나서 처음 든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 겪은 것이고, 그 사람이 열심히 쓴 책이라는 게 갑자기 새삼스러웠다. 유튜브로 영상을 볼 때는 그냥 재미있게 기획된 콘텐츠라고 생각하고 소비했지만 '김민정'이라는 이름이 적힌 책을 받으니 괜히 감동이 밀려 왔다.

 책의 주제는 유튜브에 업로드 된 영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같은 콘텐츠라도 소비하는 사람이 생산자를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해석의 깊이는 달라진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인터넷에서 내 집 마련 썰을 푼 1인, 사이버 친구 정도로 느껴졌다면, 완독 후에는 '나와 같은 비혼여성으로서 여러 난관을 뚫고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언니'로 내적 친밀감이 상승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없는 정보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유익한 데다 재미도 있었다.

 


 

Part 1 운명의 집을 찾아서

 

 비혼여성에겐 4인 가족이 살만큼 넓은 평수는 우선순위가 아니고, 학군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안전한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작가님에게도 넓은 평수와 매우 편리한 교통은 후순위였다. 20평 이상인지, 남향인지, 서울 접근성은 괜찮은지 등 명확한 조건이 있었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엄마와 함께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보러 간 날이 떠올랐다.
 '운명의 집≠결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집'이라는 걸 깨달았고,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버리고 나만의 체크리스트를 만들면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적당한 집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 둘 낳은 기혼 여성이자 맥시멀리스트인 엄마의 체크리스트는 부동산 계약을 하기 전 누구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집이 역과 마트에서 가까운지, 수납이 어떤지, 근처 주요 학군과는 가까운지 등을 따졌다. 전세로 들어가는 집이지만 계약 기간 전에 집을 빼게 되면 세입자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혼으로 살기로 마음 먹은 미니멀리스트에게 그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실거주자인 나와 엄마에게 유효하지도 않은 조건들 때문에 예산을 초과하는 집을 계약하는 게 오히려 비합리적이라고 느껴졌다.
 게다가 엄마가 마음에 들어한 집은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층 건물이 많은 역 근처라서 하나같이 채광이 별로였고, 창 밖을 보면 답답했다. 집에서 작업할 일이 많은 내가 그 집에 하루종일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보게 되었다. 부동산에서는 '끝동이라 역에서 가장 멀고, 내부 구조가 가장 인기가 없는 타입이며, 수납 공간도 가장 적다'며 그냥 보기만 하라고 데려간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가 운명의 집이라고 느꼈다. 돈만 있으면 전세가 아니라 매매하자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끝동이라 역에서는 가장 멀었지만 앞이 탁 트여 있었다. 산도 보이고 저 멀리 한강도 보였다. 거실에 쏟아지는 채광도 환상적이었다. 수납은 아이 있는 기혼 가정에게나 부족한 수준이지 둘만 살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방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엄마에게는 '엄마는 자차가 있으니 역에서 먼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버스 정류장은 이 동이 가장 가깝다', '그나마 있는 짐도 많이 줄이겠다'고 피력해서 운명의 집을 계약했고, 9개월 동안 살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혼자 남은 집에서 커피를 홀짝이면서 따뜻한 햇살을 즐길 때마다 앞으로 이런 기분을 오래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체크리스트는 안전, 채광, 안락함, 내부의 깔끔함, 실제 내가 살기에 편안한 구조, 적당한 유지비였고, 앞으로도 별다른 일 없으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풀이 리모델링'만큼은 필수다.
 작가님이 친구들에게 '화이코패스'라고 놀림 받을 정도로 화이트 톤 인테리어에 집착한 것처럼 나도 '화이트+우드'에 꽤나 진심인 편이다. 물건은 별로 없지만 웬만한 소재는 다 색상이 비슷한 우드다.

 '운명의 집'의 집주인과도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벽지를 새로 도배해주시기로 해서 전세집 화이트+우드 인테리어가 완성되었다. (자가가 아니기에 마음에 꼭 들지는 않지만...)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비혼 여성이 행복하기 위해선 집의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수준이어야 한다. (인테리어 어플에 나올 만큼 예쁜 집까지는 아니어도) 인테리어에 투자하는 건 부동산의 가치도 높여 주기 때문에 더욱 합리적이다.

 


 

Part 2 집의 기쁨과 슬픔

 

 두 번째 파트를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되었고, 고생했을 작가님이 많이 안쓰러웠다. 아무래도 직업군도 비슷한 프리랜서인데다가, 근 2년간 정말 혹독하게 절약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며 읽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용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아르바이트였지만 돈 벌기는 참 더럽고 치사했다. 졸업하고 나서 프리랜서 PD로 일을 하게 되었고, 더럽고 치사한 꼴은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내가 탐닉하게 되는 건 소비였다. 화장품, 옷, 책, 인테리어 소품, 학용품 등.

 그러다 갑자기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는데, '훈녀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싶어서도, 그게 유행이어서도 아니었다. 트위터에서 탈코르셋을 접했고, 그 내용과 취지에 동의하여 실천하게 되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주변 환경과 소지품도 많이 정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예쁘고 귀엽고 쓸데 없는 물건'을 구입했던 과거에 크게 회의감을 느꼈다.
 물건이 너무 많아 어지러운 내 방에서 대부분의 물건이 예쁨과 귀여움만을 기능으로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머지도 내게 꼭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보이고 싶은 이미지'를 위해 소유하고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잘라 버린 머리카락과 버려진 화장품, 사탕껍질 같은 옷처럼 그런 물건도 싹 다 팔거나 버리고 정리해버렸다.
 예쁜 쓰레기들이 사라지자 생활은 쾌적해졌다. 거기서 오는 충만감 뒤에 따라오는 감정은 후회였다. 힘겹게 번 돈을 그런 데 썼다는 데서 오는 후회감이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대학생 때 용돈을 벌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 졸업한 뒤 프리랜서로서 하던 투잡 쓰리잡… 일찍부터 탈코르셋을 했다면 내 통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겠지.

 나보다 사회생활 선배인 작가님께서도 비슷한 생각을 비슷한 과정을 통해 하셨던 것 같다. 특히 월세도 안 내는 옷이 차지해 버린 드레스룸 이야기에 크게 공감을 했다.
 같은 옷만 입는 것처럼 보일까봐, 특정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서, 스트레스 받아서 기분 전환으로 구입한 옷들은 금방금방 쌓인다. 게다가 여성복은 남성복에 비해 퀄리티도 떨어지는데다가 유행 타는 디자인 요소가 적어도 하나씩은 포함되어 있어 오래 입지 못한다. 여기에 소비하는 건 여성들에게 그리 이상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비단 옷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쁜 쓰레기를 구입하기 위해 돈을 쓰는 건, 그 돈을 벌기 위해 들인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과 같다. 나는 이제 더이상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

 



Part 3 나를 닮은 집

 

 작가님이 '1인 2묘 가구'라면 나는 미래에 '1인 1견 가구'로 살기를 꿈꾼다.
 2017년에 14년 동안 키웠던 반려견이 떠났고, 지금도 슬픔이 완전히 아물진 않아서 눈물을 흘릴 때도 많다.
 부모님이 개 농장에서 태어난 아이를 데려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 가족도 그 산업에 일조한 셈이다. 변명하자면 당시엔 그 산업의 실태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키우는 데도 정보가 부족해서 아이에게 더 잘 해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14년 동안 사랑하고 아끼며 키웠지만 못해준 부분이 너무 미안해서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아이가 떠난 직후에는 다른 개를 들이는 생각만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지금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단순히 귀엽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들인다는 마음으로 유기견을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경제적으로 나를 부양하고도 충분한 상황이 되면 1인 1견 가정을 꾸릴 생각이다.
 개와 함께 산책도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함께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싶다.

 '1인 1견'으로서의 삶 외에도 나를 닮은 집은 따뜻한 물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조가 있는 곳, 작업하기 좋은 넓은 책상이 있는 작업실이 있는 곳, 수납공간이 적은 만큼 넓은 생활 공간,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부를 수 있을 만큼 방음이 잘 된 곳이었으면 좋겠다.

 작가님을 닮은 집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길 읽으면서 내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있었다.

 



Part 4 가족을 찾아서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집에 혼자 있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외출할 일이 많지만 나는 집에서 작업을 하고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비혼 여성으로서의 삶을 미리 체험하고 있다.

 나의 MBTI는 ENFJ다. (물론 재미로 하는 심리 검사지만)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사람과의 의사소통과 공감에 가장 능한 유형이다.
 이런 내가 거의 1년을 혼자, 혹은 정말 가까운 지인만 만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외롭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온갖 슬픈 생각에 압도당해 베개가 축축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심리 상담에 매달 십만원이 넘는 돈을 쓰게 되면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해법은 없었다.

 책의 마지막 파트가 비혼 여성의 인간관계라는 점은 이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1인가구 비혼 여성은 동거인이 없기 때문에 고독사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관은 1인용이고 인생은 셀프지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유사 가족이나 최소한의 인간관계, 연락망은 만들어야 한다.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에서 가장 좋았던 건 나와 생각이 다른 원가족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인간관계'로 대하면서도, 나는 그들의 가족 구성원으로서가 아닌 독립적인 가구라는 점을 언제나 전제한다는 점이다.

 비혼으로 살기로 결심한 뒤부터 나는 누군가 선을 넘을 때마다 참지 않았다. 싸우거나 거리를 두곤 했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을 넘을 때마다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다.

 외로워도 이를 꽉 깨물고 참았지만 마지막 파트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조금 달라도 크게 영향 주지만 않으면 관계를 유지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조금 생각이 바뀐 뒤부터는 주변에서 가하는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의 예민함을 자극하는 것들에 적당히 흐린 눈 하면서 둔감하게 반응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

 


 

 술술 잘 읽히는 데다가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했던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를 소장하게 되어 참 기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자기 파괴적인 에세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2030 여성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시대와 사람에 휘둘리지 않고 비혼이라는 선택지에 마음을 여는 여성들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내게 꼭 필요했던 이 책을 서평단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신 21세기북스 출판사와 yes24 리뷰어클럽, 그리고 김민정 작가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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