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30년 간 융 심리학에 대해 공부하며 융 사상이 담고 있는 핵심 부분을 발견한 저자가 "영혼의 탐구자"인 융 사상 안내서로 쓴 책이다. 각 장은 융 이론의 체계를 한 주제씩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표층(자아의식), 내면의 거주자(콤플렉스), 정신 에너지(리비도), 정신의 경계(본능, 원형, 집단 무의식), 타자와의 드러내고 감추는 관계(페르소나와 그림자), 심층의 내부에 이르는 길(아니마와 아니무스), 정신의 초월적 중심과 전일성(자기), 자기의 출현(개성화), 시간과 영원에 대해(동시성)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중에 최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개념인 '페르소나와 그림자' 부분을 정리해 소개한다.
그림자와 페르소나는 잠재 인격의 짝으로 보완적 구조를 이루며 성장한 모든 인간의 정신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빛을 향해 걸을 때 미끄러지듯 뒤를 따르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다. 그 대극인 페르소나는 배우의 가면을 의미하는 로마자(라틴어)를 따른 것으로, 사교적 세계에 직면할 때 걸치는 얼굴이다."
모든 자아는 그림자를 갖는다. 그림자는 자아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의 정신 요소들 가운데 하나다. "일반적으로 그림자는 비도덕적이거나 적어도 평판이 나쁜 특질을 갖는데, 사회의 관습이나 도덕적 관례와 반대되는 본성을 가진 사람의 특징도 포함된다."(157p) "자아에 내재한 어두운 마음은 신화와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바로 인간의 악을 제대로 정의 내려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등장인물인 이아고는 이러한 고전적 예를 보여준다. 그림자 안에 모든 주요한 죄들이 도사리고 있다."(158p)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본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가 이타적이며 자신의 욕구나 쾌락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또 자아가 그림자를 직접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그림자는 무의식적으로 타자에게 투사된다. "예컨대 우리는 진짜 이기적인 사람 때문에 엄청나게 약이 오를 때가 있는데, 이런 반응은 보통 무의식적 그림자가 투사되고 있다는 신호다."(159p)
"페르소나는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과 양립하므로 자아가 편안하게 여길지는 모르지만,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자아에게는 이질적이다. ... 페르소나는 매일 사회적 세계에 적응하는 데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관계는 형제(남자의 경우)나 자매(여자의 경우) 같다. 하나는 대중 앞에 나서며, 다른 하나는 멀리 숨어 있고 은둔적이다." (160p) 그들은 서로 완벽히 대조적인 면을 보이는데 한쪽이 금발이면 다른 한쪽은 흑발이고, 한쪽이 합리적이면 다른 한쪽은 감정적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카인과 아벨, 이브와 릴리트(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이브 이전에 창조된 아담의 반역적인 첫 아내), 아프로디테와 헤라 등이 그러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짝들이다. (160p)
"심리학적으로 볼 때 페르소나는 개인의 의식적 생각과 감정을 타자에게 감추거나 드러내는 일을 하는 기능 콤플렉스다. ... 페르소나는 (이렇게)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쉬워지도록 하고, 어색함이나 사회적 곤란을 일으킬지 모를 거친 부분을 유연하게 해준다." (161p) 융에 의하면 인간의 성격은 복잡하고 어떤 조건에서는 파편화되기 쉽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의 정신에도 수많은 잠재 인격들이 내재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개인은 임상적 의미에서 다중인격은 아니더라도 "밖에서는 천사가 되고, 집에서는 악마가 되는" 인격 분열의 흔적을 드러낸다. 따라서 "인격은 상황적이다." 문학작품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는 이런 예의 극단적 형태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동일한 주제를 다룬 것이다.
자아는 생활하면서 역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아는 페르소나와 자주 동일시한다. "심리학적 용어인 '동일시identification'는 외부의 대상, 태도, 인물을 흡수해 연합하는 능력을 자아가 갖고 있음을 가리킨다. 동일시는 대개 무의식적 과정이다.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무심코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 그는 스스로 주목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모방을 알아챈다."(167p) "일반적으로 명망 있는 역할일수록 동일시는 더 강해"지며 "야심과 사회적 열망이 있어야 동기부여가 된다."(170p)
"자아와 페르소나의 기능 콤플렉스는 상반된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자아는 근본적으로 분리와 개성화를 지향하고, 무엇보다 무의식 밖에서 자리를 강화하며 가족 환경 밖에서도 입지를 굳히려는 경향이 있다. 자아는 자율성을 향한 강한 운동, 즉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나 됨I-ness'을 강하게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페르소나가 뿌리내린 자아의 다른 부분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대상 세계와 관계하고 이 세계에 적응하려 한다. 이들은 자아 안에서 두 가지 상반된 경향성, 즉 한편으론 분리와 독립을 향한 욕구를, 다른 한편으론 관계와 소속을 향한 욕구를 보여준다." (171p)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에는 두 원천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조건과 요구에 따른 것으로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지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사회적 목적과 열망에 맞춰진다. "페르소나가 형성되려면 개인과 사회 사이에 협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인은 문화 주변부에서 고립된 삶, 즉 성인 세계에서 일종의 혼돈을 겪는 청소년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169p)
페르소나의 발달에는 두 가지 난제가 잠재되어 있다. 하나는 페르소나와의 지나친 동일시로, 세상살이에 만족하고 적응하는 것이 지나쳐 이렇게 구성된 이미지가 성격의 전부인 양 믿게 된다. 다른 문제는 외부 대상 세계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내면세계(융이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의 지배라고 일컬은 조건)에만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이다. (172-173p)
"페르소나의 발달은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 또래와의 동일시는 청소년들을 부모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데 일조하는데, 이것은 성숙해지는 데 필요한 단계다." (173p) "외향적인 사람에게 적당한 페르소나를 찾는 것은 더 손쉬워 보인다. ... 반면에 내향적인 사람의 페르소나는 모호하거나 다르고 불분명해서 상황마다 다르게 반응한다." (174p)
자아의 원형적 핵심은 변하지 않지만 페르소나는 생애 과정에서 여러 번 바뀔 수 있고 바뀌는데 "이것은 변화된 환경에 대한 자아의 지각이나 그 환경과 작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한다. 주요 변화는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또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초기 성인기에서 중년기로, 그다음 노년기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밖에도 페르소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양한 역할과 출생 순서, 성별이 있다.
융 심리학에서 심리 발달의 전반적 과제는 통합이다. 따라서 전일성이 매우 중요하며 최상의 가치를 지닌다. 통합은 자기 수용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 자기 수용이란 페르소나에 속하지 않은 이상적 이미지 또는 문화적 규범 같은 이미지를 자신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림자는 늘 악한 것이 아니며 페르소나에 순응하지 않아 그림자에 대해 수치심이 생겨났기 때문에 악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한다.
"융은 페르소나와 그림자라는 두 극이 긴장 관계에 있을 경우, 자아가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모두 허용하고 무의식은 새로운 상징 형태로 창조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내면의 빈 공간을 창조한다면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징의 역할을 통해서 페르소나와 그림자 대극들의 관계가 진척되는데, 이러한 진척은 ... 자아가 새로운 태도를 갖고 세상과 새롭게 관계를 갖도록 두 대극이 연합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치료 요법이나 삶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두 부분 모두를 발달시킬 때 관찰될 수 있다." (18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