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인문학, 세상을 읽다>로 몇 년 전 내게 인문학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준 바 있다. 이 책은 얼마 전 이웃님 리뷰를 읽고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 읽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어본 글쓰기의 태도와 가치에 관한 책들과 확실한 차별이 느껴지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궁금해하던 '글쓰기와 사회성'에 대한 내용이 있어 무척 기쁘다.
저자는 "모든 글쓰기는 사회적 작업"이라고 말한다.
골방에 갇혀 혼자 쓰는 일기조차 내가 죽은 후 누군가 읽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며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글에 구현된 생각들은 다른 사람의 지식과 사상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글로 쓴 생각은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 유시민은 "배운 것 아흔아홉 줄에 단 한 줄 스스로 생각한 것을 덧붙일 수 있다면, 자신 있게 글을 써도 좋다"고 했다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텍스트란 작가 개인이 아니다. 사회의 힘에 의해 써지는 사회적 작업이다"라고 했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텍스트가 세계 속에, 세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라"고 했다 한다.
모든 글쓰기는 어떤 형식으로든 사회에 구속됩니다. 글은 사회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쓰는 것이고, 사회적 산물로서 읽히는 것입니다. 글에는 역사나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일단 발표된 글은 역사와 사회 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25P)
자기 경험을 글로 쓸 때는 냉철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찰이 없으면 자칫 유치해지기 쉽습니다. 경험의 역사적, 철학적, 사회적 의미를 탐구해야 합니다. (31p)
또 저자는 "글쓰기가 사회적 자아를 확장시킨다"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이 있어야 하는데 글감은 문제의식을 가질 때 쉽게 구할 수 있고, 문제의식은 사회적 고통에 관심을 두어야 생긴다고 한다.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자신의 관심과 고통, 불편함에도 무관심하지 말고 해당 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료와 책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도 많아지고 "이건 좀 독특하다.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들면 드디어 글감을 찾은 것이라 한다. 하나의 주제는 여러 주제와 연결돼 있어 관련된 주제에 관심을 확장하면서 다양한 글감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진부한 글을 피하려면 남다른 사고를 해야 하는데 저자는 '위치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독창적 사고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위치성입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위치성이 다릅니다. 똑같은 위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의 위치성을 만들어 내는 출신 지역, 학벌, 가문, 젠더, 계급, 세대, 정치적 당파성 등에서 똑같은 조합을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그 위치성을 바탕으로 책을 독해해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독창적인 사고를 구현하게 됩니다. (59p)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읽은 책을 정리해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을 컴퓨터로 정리해 놓으면 글감이 생기고, 자기 철학이 확고해지며, 논리와 근거가 치밀해집니다. 또 문장력이 좋아지고 어휘량도 늘어납니다. (83p)
흔히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은 직접 써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기에다 저자는 글쓰기에 '신체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글쓰기가 정신노동만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니체는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걷다보면 뜻밖의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한 적 있을 거다.
글을 쓰려면 우선 손이 부지런해야 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손이 게으르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틈만 나면 손으로 메모하면서 책을 읽고, 읽은 책의 내용을 컴퓨터에 정리하고, 글감이 생각나면 미루지 말고 써봐야 합니다. (98p)
다음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을 저자가 인용한 대목이다.
"생각의 시작은 불편함이다. 자신의 일상과 기존 언어가 일치할 때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기 경험과 규범(이데올로기)이 불일치할 때는 자신과 세상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든 타인을 설득하든 새로운 생각을 찾아야 한다. 갈등은 현실과의 불화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이다. 만족과 평화, 안락은 무지의 첫 단계다." (104p)
정희진의 말은 카프카가 친구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는 글과 일맥상통한다. 박웅현 작가의 동명 책 '책은 도끼다'로 알려진 글이다.
...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책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 같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속으로 추방당한 것 같은, 자살처럼 다가오는 책이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 버린 바다를 깨뜨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105p)
마지막으로 저자는 글쓰기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글쓰기가 정돈된 사유를 유도해 사고를 단련시킨다는 것, 글을 쓰다보면 제너럴리스트가 된다는 것, 글쓰기가 사람을 사상가로 만든다는 것, 또 글을 쓰면 지적, 정신적 자유를 얻고, 예술을 깊이 이해하게 되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글쓰기가 이렇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글쓰기에 대해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지침서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