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하버드대와 MIT대를 마치고 월가에서 증권분석사로 일하는 신순규 씨는 놀랍게도 시각 장애인이다. 아홉 살 때 양쪽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 더 이상 친구들과 뛰어놀 수 없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생각이 깊은 조숙한 아이로 자랐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 한 가운데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다. 아니, 정상인보다 더 뛰어나고 싶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사람이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사는지가 결국 그의 인생에 펼쳐지는 드라마의 각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기까지 밟아야했던 인생 과정을 다섯 개의 키워드로 설명한다. 본다는 것, 꿈, 가족, 일, 나눔. 오히려 정상 시력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본다는 것’을 당연시 여기기 때문에 신이 주신 놀라운 신비와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지 모른다. 게다가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편견, 잘못된 기대, 그리고 스스로 움츠러드는 태도는 비단 장애인만이 염려할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사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려운 가정환경, 개인의 능력, 사회성 부족, 부정적인 태도 등이며 장애와 상관없이 이런 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고 그는 자신의 삶으로 말한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것은, 저자의 양부모와 다름없는 미국 맘이 해준 말이다. 즉,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나를 먼저 바꾸기가 더 쉽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 어린 나이에 미국 연합세계선교회의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를 때만 해도 그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반고로 옮겨 대입 공부를 시작했다. 하버드에서 의사가 되려다 MIT로 옮겨 교수를 꿈꾸었고, 그러다가 다시 애널리스트가 된 그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아내가 운전을 할 때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몰면 내비게이션이 들려주는 말, “경로를 재탐색합니다.”이다. 그의 인생역정이 그렇고 아마도 꿈을 이룬 많은 사람들의 인생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나의 일에서 다른 일로, 또 다른 일로... 저자가 정말 바라던 자신의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매 순간 삶이 주는 기회에 헌신을 다 하는 것이 또 다른 기회를 불러오고,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은 퍼즐의 전체 그림을 모르는 아이가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과 같았다고 그는 말한다. 시각을 잃고 장래가 암담했던 아이가 엄마의 권유로 피아니스트를 꿈꾸었고, 운 좋게 유학을 가 미국에서 좋은 부부를 만나 도움을 받았고, 의사, 교수를 꿈꾸다 애널리스트로 월가에 자리를 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 있을지 염려했던 그가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장이 된 과정은 모두 퍼즐 조각을 맞추는 아이처럼 신기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간절히 원하고 백방으로 문을 두드린 끝에 일어난 이 기적 같은 일들을 통해 그는 자신이 퍼즐 조각을 맞추는 데 누군가의 힘이 함께 하고 있음을 매 순간 느꼈다고 한다. 그가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의 바탕에 있던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신순규 씨의 인생을 더듬어 가다보면, 그의 마음자세 외에도 무척 인상적인 사실 몇 가지를 만나게 된다. 눈이 먼 아들의 장래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 엄마, 그를 양아들처럼 받아들이고 키워준 미국인 오메셔 부부의 삶, 그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고 도움을 준 미국인 친구들의 포용력, 장애인 한 사람에게라도 더 희망을 주어 인생의 비전을 바꾸어주고자 나눔을 실천한 재미 한인교회의 활동이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안다고 했던가. 인생에서 부모님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도움을 받은 그는 이제 야나 선교회(YANA MINISTRY)를 만들어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장애인 새싹들에게 돌려주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해변의 모래사장으로 떠밀려온 수천, 수만 마리의 불가사리 중에 단 몇 마리만이라도 바다로 돌려보내주는 것은 그 불가사리의 인생을 바꿔주는 엄청난 일이다. 우리의 작은 봉사가 얼마나 큰 위력을 갖는지 깨닫게 하는 본문의 일화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장애인과 소수자, 여성 등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차별’과 ‘인권’ 문제가 아직도 짙게 남아있는 우리 현실을 마음 아프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