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창조를 위한 용기

[도서] 창조를 위한 용기

롤로 메이 저/신장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내가 '창조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블로그에 글쓰기 연습을 시작하면서다. 글을 써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거다. 글감과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가 빈곤해서 당혹스러운 때가 있다는 것을. 그동안 '창조성'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어보았는데 그다지 인상 깊은 책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창조성'을 다루지만 주변부에 머무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롤로 메이의 이 책은 다르다. 창조성이 발휘되는 과정부터 본질적인 측면까지 정신분석가이자 경험자의 측면에서 세세하고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왜 '창조를 위한 용기'일까. "용기란 절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망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말 속에 용기와 창조성의 관계가 암시돼 있다. "용기는 존재 안에 중심됨을 요구"하며 모든 미덕과 개인적 가치의 밑바닥에 있으면서 현실성을 부여하는 덕목이다. 따라서 "사람이 존재하고 생성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창조적 용기는 가장 중요하다. 저자는 극작가, 음악가, 화가, 무용가, 시인, 성자를 새로운 사회를 세울 형식과 상징을 보여주는 예술가라고 부른다. "예술가는 우리 문화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원거리 조기 경보'를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먼저 예술가가 창조하는 과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면 창조자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봐야 한다. 모든 "창조 활동의 시작에는 '만남'이 있다." 화가는 자신이 그릴 풍경을 만나고, 그 풍경에 푹 빠지며 심상(내적 환상)을 만난다. 다음엔 팔레트의 여러 가지 색들과 캔버스의 흰 빛깔을 만나고 심상을 떠올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몰입이다. 우리는 만남이 빠진 가짜 창조적 활동과 진짜 창조적 활동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만남이 빠진 가짜 창조적 활동으로 인한 작품은 현실도피적이며 공허하다.

 

 저자는 대학원생 시절 연구논문을 쓸 때 경험한 무의식의 통찰이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한다. 칼 융은 무의식적 경험과 의식 사이에 양극성, 보상적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의식이 어떤 문제에 대해 한쪽 방향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치면 내 무의식은 다른 방향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변증법적 과정은 일과 휴식 사이에서 느슨한 틈을 타고 새로운 통찰이 뚫고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때 예술가는 불안과 죄책감, 기쁨과 감사를 느끼며 생생한 황홀경과 함께 고양된 의식을 갖게 되고 확신을 얻는다. 

 

 '창조성은 자발성과 제한 사이의 긴장에서 생긴다.' 형식과 디자인, 계획과 형태는 모두 한계 안에 있는 정신적 의미를 가지며, 변증법적 관계에서 나온다. 창조적 자발성과 형식은 새로운 디오니소스적 요소와 아폴로적 요소의 투쟁이다. 전환기에는 이분법이 공공연하게 나타나는데 낡은 형식을 초월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충동은 전의식과 무의식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은 정돈된 체제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교조주의자들을 위협한다. 스탈린 통치 시대의 러시아 당국과 독재자들, 특정 시기의 교회와 자본주의는 예술가를 장악하거나 이용하려고 해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기술적 창조성의 성공이 우리의 존재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계시와 과학적 발견 사이의 상관관계를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창조성을 수반하는 불안과 새로운 통찰과 형상을 차단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평범하고 점진적으로 공허하게 만든다.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말한 것처럼, 이성에만 기초하지 않고 그가 '느낌'이라고 부른 것까지 포함한 이성에 기초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이 리뷰는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산바람

    창조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지식이 융합되고 숙성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성된 아이디어가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기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있어야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2017.04.17 21:5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창조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공이 쌓인 후 적절한 시점에 외부로 나타나는 아이디어라는 점 잘 짚어 주셨네요. 말씀하신 대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이 있어야 바로 용기로 연결되는군요. ^^

      2017.04.19 11:23
  • 파워블로그 책찾사

    창조와 용기가 언뜻 무슨 관계인가 싶은 제목을 보다가 아그네스님의 글을 읽으니 창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인하여 왜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기존과 다른 것이 창조가 아니라 그 내면의 복잡한 과정이 존재하고 있기에 이것을 실제 발현시키기 위하여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

    2017.04.18 08:0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저도 이 책이 창조성을 다루고 있는데 용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 책을 읽다보니 창조성을 비롯해서 우리 삶을 생생하게 나아가도록 만드는 힘이 용기라는 덕목과 밀접하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예술가의 사회, 존재적 가치도 새롭게 알게 되면서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로 문화, 예술계를 억압했던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

      2017.04.19 11:26
  • 파워블로그 꼼쥐

    정말 창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창조는 처음이라는 것이고, 익숙하지 않다는 건 사람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될 테니까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창조는 불가능하겠지요.

    2017.04.18 13:2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그렇네요. 남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는 창조성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됐어요.^^

      2017.04.19 11:33

PYBLOGWE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