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학교에서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생 때 배운 용어 중에 사회간접자본(Socila Overhead Capital, SOC)이 있었다. 그 정의는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을 직간접으로 지원해주는 자본의 하나로서, 도로/항만/공항/철도 등 교통 시설과 전기/통신, 상하수도, 댐, 공업단지 등을 포함하고 범위를 더 넓히면 대기, 하천, 해수 등의 자연과 사법이나 교육 등의 사회제도까지를 포함한다.]와 같다. 이 책에서는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의미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책을 쓴 클라이넨버그는 이런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결정하는 물리적 환경인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Social Infrastructure), 줄여서 사회적 인프라의 중요성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조건이기도 하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p.11). 뒤에서 나오지만 클라이넨버그는 사회적 인프라를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p.20)라고 규정한다.
책의 긴 서문은 1995년 7월에 발생한 시카고 폭염 사태를 짚어보면서 시작한다. 일주일 동안 739명이 사망한 이 사태 후 행해진 사망자 분석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당연히 사망자가 많았으리라 예측되었던 가난하고 폭력이 난무한 동네 중 일부가 사망자가 가장 적게 발생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그런 동네의 특징은 지역 주민 간의 인적, 사회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조장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제대로 구동하고 있었다는데 있다. 결국 사회적 인프라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책은 사회적 인프라가 현대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함에도 지금까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p.23)음을 밝힌다. 사회적 인프라가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프라만으로 양극화한 사회를 통일하거나 취약한 공동체를 보호하고 소외된 개인들을 연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사회적 인프라 없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p.23)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인용한 것은 기실 책의 본문이 이런 견해, 주장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문이 가리키는 바를 잘 이해하면 책의 큰 그림은 다 숙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책의 본문은 사회적 인프라가 잘 구동되는 실제 사례와 그에 대비되는 상황, 그리고 미국 내―책의 모든 내용은 미국에 해당한다―에서 해당 사회적 인프라가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걸림돌과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또는 사회적 인프라가 잘 작동하기 위한 제언이 포함되기도 한다.
본문에서 가장 먼저 거론하는 사회적 인프라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다른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내용에서 같이 나오기도 한다.) 가장 빈곤한 동네 중 하나인 뉴욕 동부 브루클린의 뉴로츠가에 있는 낡은 도서관이 등장하는데 시설은 낡았지만 고령자를 대상으로 스크린 볼링장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책 읽고 빌려주고 강연을 듣는 일상의 업무와는 달리 활동성 있는 운영이 인상 깊다. 도서관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자의 고립을 해소하고 지역 주민들 간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회적 인프라는 우리가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데 배경과 맥락을 제공하며, 도서관은 우리가 가진 가장 필수적인 사회적 인프라 중 하나인데 가장 저평가된 사회적 인프라이기도 하다(P.51). 이런 도서관이 지닌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다양한 목적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탓에 공공도서관 시스템과 직원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p.52)는 데 있다고 본다. 이보다 더 큰 근본 문제는 미국 정치인과 공무원이 도서관을 사치품으로 여기는 시각에 있는데 정치/행정 영역에서의 공공성 취약은 도서관을 비롯한 사회적 인프라 운영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한다.
주거 환경도 주요한 사회적 인프라이다. 세인트루이스에 건설되어 각광을 받다 십여 년 만에 모두가 기피하게 된 프루이트아이고 공동 주택을 사례로 들며 공간 관리의 실패가 어떻게 거주민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교류를 단절시켜 결국 폐쇄의 길로 들어서는지 냉철하게 보여준다. 하드 인프라를 그럴싸하게 만들어도 소프트 파워와 연결되지 않으면 이용하지 않는 대표 사례이다.
또 다른 사회적 인프라로 학교가 등장한다.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 상호 간에 교류가 발생하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한 학교의 사례를 통해 공동체 의식이 함양되고 학습에 진전이 발생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한국에서라면 이런 교류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궁금하다. 학부모 모임이 이루어지면 이너 서클과 아우터 서클이 구분되고 이 안에서 차별이 생긴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서이다.) 큰 학교를 소규모로 쪼개면서 인적 교류는 늘고 반사회적 행동은 억제하는 효과를 낳은 사례는 신선하다. 학교―주로 대학교―와 지역사회 간의 경계 허물기를 통해 학교가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도심 내의 녹지와 텃밭이 건강한 유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상황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도심 내의 방치된 공터를 활용한 도시농장 또는 공동체 텃밭의 조성이 세대 내뿐 아니라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함으로써 사회적 고립이 완화되고 사회 참여가 증대하며 동네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일련의 선순환은 사회적 인프라의 가치를 다시 일깨우는 사례다. 이는 증가하는 고령자들이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는 유익하고 저렴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소재와 직접 관련되지는 않지만 마약 사용자들의 사회 편입을 높이기 위해 그들에게 안전한 헤로인을 공급하는 스위스 얘기는 특이하다. 한국의 보통 사람으로서는 마약에 손댄다는 게 결코 일상적인 일이 아닌 까닭일 테다. 다만 그런 정책이 마약 사용에 관대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향에서 나왔음을 보고 사회의 상황에 따른 정책 운용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도서관, 주거 형태, 학교, 도심 내 녹지와 텃밭 등 하드 인프라 중심―물론 이런 하드 인프라를 운용하기 위한 소프트 인프라의 중요성도 같이 다뤘지만―의 전개에서 벗어나 소프트 인프라가 중심이 되는 전개로 바뀐다. 클라이넨버그는 미국 내 분열 상황을 강조하면서 심각한 차별에 직면한 모든 집단에게는 지지와 응집력을 강화해줄 공간이 필요(p.234)하며 이는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운동경기장과 같은 형태의 공간도 그에 해당하지만 인터넷 공간도 연결을 강화하는 사회적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언급한다. 미국이 이루지 못한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 사례를 싱가폴, 로테르담 등에서 가져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고 틀어서 비판하는 부분은 슬쩍 웃음이 나기도 한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한 선제적 인프라스트럭처의 구축 필요성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는데 아직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의 상황을 돌아볼 때 답답한 마음이 든다. 결국 사회적 인프라는 하드 인프라스트럭처를 대신하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하드 인프라만큼 중요한 개념(p.290)으로서 인지하고 건물이나 시설 등 유형의 인프라 구축에만 돈을 들이고 신경 쓸 게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의 확보에 주력하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클라이넨버그가 말한 사회적 인프라가 도시행정을 하는 공무원이나 기타 관련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서는지 궁금하다. 다분히 미국의 특성을 반영한 내용이고 항목이라 한국의 도시행정에 바로 접목시킬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불평등과 고립의 탈피가 사회적 인프라의 활성화―당연히 하드 인프라와 소프트 인프라 모두 확보되어야 한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 전체의 만족도가 올라간다면 이 영역에 관심을 쏟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도시행정가 뿐 아니라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들도 참조할 책이라 여겨진다. 이런 이들이 아니더라도 나처럼 도시에서 계속 생활할 이들도 사회의 연결 고리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받는다고 볼 수 있겠다. 히키코모리처럼 일체의 관계를 끊고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생활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책은 모두 대도시에서의 사례를 따왔지만 한국의 중소도시에도 적용 못할 이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재원일 텐데 각자 필요에 따라 합리성 있게 대처하라고 할 수밖에 다른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
사회적 인프라의 필요에 대한 현실감 있는 이야기, 잘 읽었다. 번역은 쉽고 매끄럽게 잘 이루어졌다고 평가한다. 책의 부제인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을 잘 느꼈다. 다만 사진 자료 등 시각 효과가 부족해서 실제 사례가 어떤지 확인할 수 없었던 점은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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