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성서를 읽고 공부할 때 자주 궁금했다.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많은지, 같아 보이는 사항을 서로 다르게 쓴 것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등. 그런 의문점들에 대해 이런저런 답을 들었지만 그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려웠다. 두꺼운 성서 해설서도 읽었지만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신앙에 의존해서 풀어보려고도 했지만 신앙이 부족해서인지 답을 얻지 못했다. 성서에 대한 일종의 열정의 시기가 지나고도 남아있던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책이 눈에 보이면 구해서 읽어보곤 했다. 이 책도 그런 관점에서 구입했다. 물론 이 책은 제목처럼 신약만을 다룬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일 마틴은 서문에서 주로 1세기와 2세기 초에 신약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들여다(P.26)보겠다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역사비평 방식을 사용한다. 역사비평 방식이란 고대의 맥락을 바탕으로 본문의 의미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원래의 저자가 의도한 의미 또는 원래의 독자가 이해했을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P 24) 이를 위해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고 활용할 수 있는 문서들을 참조하고 비교한다. 이를 통해 1~2세기의 초기 교회가 가족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며 각 교회마다 조금씩 다른 믿음을 지니고 일종의 교리 투쟁을 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교회사를 읽을 때 그리스도교 생성 초반에 그 많았던 이단 논쟁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마틴은 역사비평은 성서를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방법은 아님을 밝히고 있으니 영성을 얻으려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의 각 부분들은 그들이 선교하고자 했던 대상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마르코, 마태오, 루가 복음서 등 공관복음서의 기본적인 집필 의도에 대해서는 이미 배운 바 있어서 새롭지 않았지만 바울로의 편지에 대한 분석은 많이 새로웠다. 예를 들어, 열세 편에 달하는 바울로의 편지에도 위서로 확신되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마틴은 골로사이서나 에페소서의 저자 또는 저자 그룹이 바울로의 명성을 빌어 자신들의 믿음이 옳음을 주장하려 했음을 증거를 들어 설명한다. 밝혀진 것은 밝혀진 대로, 아직 불확실한 것은 불확실한 대로 드러내며 논지를 전개하기 때문인지 텍스트에 대해 신뢰가 간다.
여러 문서들 중 신약의 정전으로 포함된 부분들이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같은 정보를 알 수 있으며 정전에 포함되지 않은 토마 복음서와 바울로와 데클라 행전 등의 내용을 살펴보며 그리스도교 교회와 교리의 초기를 짐작하게 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문제이지만 예수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관점이 그 당시부터 나뉘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위상에 대해서도 엇갈린 시각이 드러난다. 한동안 예수가 실존 인물인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책에서는 실존했다는 사실은 학자들 사이에서 분명히 인정된다고 말한다.
꽤 길고 누군가에게는 불만스러울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나는 만족스럽게 읽었다. 좀 더 분명한 증거들이 더 많이 나와서 역사비평 방식의 성서―신약이든 구약이든― 이해가 깊어지기를 바란다. 역사비평을 통한 성서 이해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되는 바가 있다. 마음으로만 읽지 않고 증거와 근거를 통해 신약을 읽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