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
유럽은 일부 국가이긴 하지만 여러 차례 가봤다. 현지에 설립한 공장이나 사무소를 점검하기 위한 업무 출장이 대부분이었지만. 출장 외의 일정으로는 단 한 번, 열흘 동안 별도로 휴가를 내어서 다녀온 경우가 있었다.
출장 기간이 아주 긴 경우는 거의 없어서 출장을 갈 때면 시차를 활용해 출장의 앞이든 뒤든 토요일과 일요일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 매번 출장 일정을 끝낸 뒤의 1~3일 정도는 연차휴가를 써서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다음번에 또 올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찾아보자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출장을 승인하는 분들이 출장에 이어 휴가를 사용하는데 너그러웠다. 출장지 주변의 알려진 곳을 찾아다니고 박물관과 미술관, 연주회장을 방문했다. 출장지와 떨어진 곳으로는 이른 시간부터 차를 운전하거나 기차를 타거나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움직였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걷는 시간이 가장 많았고 뜀박질로 걸음을 보충하기도 했다. (공식 일정 이외의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은 당연히 내가 부담했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빨리, 많이 보려고 하니 늘 분주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조차 서둘렀고 카페에선 커피 한 잔조차 후다닥 마시고 일어서곤 했다. 그렇게 자동차 경주하듯 다녔던 기억은 뭔가 빠진 것처럼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소개에 나오는 안단테 여행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늘 아지타토, 비바체, 프레스토로 움직였던 나에게 하는 말처럼 안단테가 들렸다. 안단테는 마냥 느리게 하라는 뜻을 품고 있지 않다.

그러면 책은
이 책은 느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행담의 소재는 파리, 빈, 프라하, 런던, 베를린, 그리고 라이프치히 등 모두 유럽에 소재한 여섯 곳의 도시이다. 여섯 곳 모두 어떤 형식으로든 발을 디뎌본 적이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 이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라이프치히만 약 60만 명 정도일 뿐이고 나머지 도시들은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대도시들이다. 그리고 이 도시들은 이미 관광지로 너무나 잘 알려져서 도시 곳곳에서 한국말 소리를 들을 수 있던 곳들이기도 하다. 느림과 여유를 추구한다면 한적한 시골이거나 교외 지역 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가 등장하지 않을까 했던 예상이 뒤집어진다.
그런데 글쓴이가 각각의 도시에서 다다른 데는 자주 의외의 장소들이다. 보통의 여행 안내서에서 강조하여 소개하는 유명한 장소보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덜 가지만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가는 곳으로도 시선이 가지만 감상의 방식은 남다르다. 그 장소에 녹아있는 역사를 들추고 거기에 살면서 그곳을 향유하고 풍부하게 했던 인물들을 불러낸다. 결국 도시는 겉모습뿐 아니라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그리고 지금도 남기고 있는 문화와 가치 위에 서있음을 읊는다. 글쓴이는 자신이 이 도시들에서 무엇을 보았고 어떤 감상을 품었는지, 또 우리가 여행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풍부한 인문 지식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각 도시의 이야기는 그 도시를 담은 영화 한 편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라이프치히만 빼고. (라이프치히를 소재로 한 영화는 없었나 보다) 나오는 영화를 본 이라면 보다 생생하게 그 도시에 빠져들도록 배경을 설계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 편의 영화 모두 영화관에서 봤었기 때문에 내게는 꽤 유효한 설정이 되었다.
글이 시작되기 전에는 책에 나오는 장소가 어디쯤에 있는지 보여주는 손으로 그린 지도가 나온다. 지도를 먼저 감상해도 되겠지만 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장소가 바뀔 때 지도로 돌아가 그 위치를 확인해볼 때 그 유효성이 더 올라간다.

여행을 말하므로 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따라옴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 속의 사진들은 대부분 글쓴이가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진 전문가가 아닌 여행자의 손길이 묻어서 자연스러워 보이는 점이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여섯 도시 이야기
나오는 도시 중 베를린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에는 길게 머문 적이 없다. 파리는 닷새, 프라하는 나흘 가량, 다른 도시들은 기껏해야 이틀 가량 발을 담갔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기 전에 묘한 흥분감이 돋았다. 이제 눈을 들어 멀리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첫 번째 도시는 파리다. 글쓴이가 파리를 이야기하려고 꺼내온 영화는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영화 속의 꿈같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는 아름다운 시절 Belle Epoque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시대가 나온다. 영화와 연결되는 글을 보면 선택이 탁월했다고 동의하게 된다. (우디 앨런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불쾌하지만)
파리하면 떠오르는 랜드마크가 여럿 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개선문, 샹젤리제거리,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 노트르담 대성당, 엘리제궁, 오페라하우스 등등. 그런데 글쓴이는 이런 장소들을 거론하지 않는다.
그가 소개하는 파리는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는 파리이다. 와서 보라고 으스대는 데가 아니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몸을 부대껴 가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파리가 있다고 한다. 그곳들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몽마르트르와 카페와 센강과 그 위에 놓인 다리들과 묘지들이다. 이 장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예술과의 밀접한 관련성이다. 글쓴이의 발길과 눈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술가, 음악가, 작가들의 이름이 묵직하다. 뭐랄까, 파리는 명사들의 발자취가 진하게 남아있는 도시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런 방식과 감성으로 도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자극을 준다.
책을 읽고는 다시 파리를 가볼 기회가 온다면 센강에 놓인 모든 다리를 건너보고 싶다는 유혹을 받았다. 유람선도 타보고 싶다. 커피 공부를 하면서 이름을 알게 되어 찾아갔던 카페 프로코프 이외의 다른 카페에도 가보고 싶다. 파리에 갔을 때의 나는 루브르와 오르셰에 빠져 있었고 에펠탑에 오르고 베르사이유에 가느라 다른 걸 할 정신이 없었다.
두 번째 도시는 빈이다. 역시 영화 얘기로 시작한다. 빈을 담은 영화로는 비포 선라이즈가 나온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빈이라는 도시에 그리 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너무 귀족 냄새가 난다는 선입견과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편견이 작용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러다 이 영화를 보고 영화 속에 비친 빈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빈에서는 파리보다 바빴다. 머물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비행기로 도착해서 다음 비행기를 탈 때까지 약 30시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어렵게 구한 오페라 공연을 보고 밤늦게까지 시내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리고 짧았던 빈 방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글쓴이의 빈 여행기가 무척 궁금했다.
글쓴이가 빈을 돌아보는 느림은 두 가지이다. 느림의 가장 큰 부분은 카페이고 그 다음은 파스콸라티 하우스다. 빈의 카페도 여러 곳 소개하지만 그곳을 이용했던 인물보다 장소 자체의 분위기에 집중한다. 빈에 왔으니 비엔나커피의 원조는 맛보고 가야 한다며 들렀던 첸트랄 카페―그때는 센트랄이라고 읽었다― 얘기를 보니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런데 파리에서처럼 그 장소를 빛나게 했고 명성을 남겨준 인물들의 이름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파리의 카페가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으로 채워졌다면 빈의 카페에는 클림트와 프로이트의 이름만이 나온다. 빈의 역사와 거기에서 명멸했던 인물들을 떠올리면 이 결과는 다소 의외다.
파스콸리티 하우스에서는 베토벤이 소환된다. 베토벤은 빈에서 35년을 사는 동안 30번이나 이사를 다닐 정도로 민감하고 까칠했다. 그런 그가 세 번 거주할 만큼 이 집과는 좋은 인연을 맺었다. 그 인연의 뒤에는 베토벤의 성정을 받아들였던 파스콸리티 남작의 이해가 놓여있었다. 지금 이곳은 베토벤의 유물을 전시하는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니 방문의 기회를 놓친 내 무지가 안타깝다.
파리에서 네 가지 소재를 채택했던 것과는 달리 빈에 대해 두 가지만 거론하는 점은 아쉽다. 글의 분위기도 파리 편에서 들썩이고 활기에 찬 느낌이었다면 여기에서는 다소 차분하다.
그 다음은 프라하다. 프라하는 두 번 가봤다. 한번은 출장에 이어서였고 한번은 개인여행에서였다. 유럽 개인여행 일정 전에 가본 적이 있었던 곳은 프라하뿐이었다. 그만큼 다시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던 도시였다. 사실 첫 여행(?) 때에는 중간에 황당한 도난 사고를 겪어 이리저리 신고하러 다닌다고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사고는 수습되었고 그 당혹 속에서도 사고를 당하기 전의 도시는 강한 인상으로 남아 꼭 다시 와서 잘 돌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프라하를 여는 영화는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미션 임파서블 1편이다. 미션 임파서블 얘기는 여섯 쪽을 차지한다. 빈 편의 비포 선 라이즈가 세 쪽이었으니 두 배나 많이 얘기한 셈이다. 영화관에서 볼 때에는 몰랐지만 프라하를 처음 다녀온 뒤 TV에 나오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속으로 저기는 어디 하면서 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의 뒤로 가면 새벽의 7인과 아마데우스, 두 편의 영화가 더 등장한다.
프라하 편에는 카페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 편에서는 프라하의 특정 부분이 테마가 되지 않고 프라하 구시가의 거의 모든 곳이 주인공이 된다. 파리나 빈을 얘기할 때와는 글의 톤이 다르다. “천천히.”라고 하면서도 발걸음을 재게 걷는 느낌이 든다. 글쓴이가 그리 말하지는 않지만 하나도 놓칠 게 없으니 서두르지 말고 이 모든 것을 눈에 넣고 귀에 담고 가슴에 실어 즐기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듯하다. 그가 이름을 부르는 거리, 장소, 표식 하나하나가 기억을 되살려 마음을 덥게 한다.
앞선 도시들에서 장소가 인물을 데려오는 형식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인물이 장소를 불러내는 형식으로 글의 모양새가 바뀐다. 카프카, 모차르트, 스메타나, 얀 후스. 문학과 음악, 종교 영역의 거장들이다. 그들과 프라하의 인연으로 중심을 잡고 그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프라하 역시 긴 역사와 문화를 품은 도시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책에서는 짧게 언급되지만 5월에 벌어지는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정확한 명칭인지 모르겠다―를 여행자들은 놓치지 않으면 한다. 싼 가격으로 상당한 수준의 클래식 음악 공연을 만끽할 수 있다. 개인여행을 갈 때 이 시기를 골라 두 가지 공연을 미리 예매하고 갔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체코의 맥주를 빠트리지도 말기를. 글쓴이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런던은 영화도 장소 설명도 모두 노팅힐로 시작한다. 노팅힐은 런던의 서쪽에 위치한 동네다. 런던은 이 영화를 알기 전에, 정확히는 개봉하기 몇 년 전에 다녀왔다. 아마 가기 전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면 여행의 한 코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기회는 없었다. 런던에 대한 내 첫 추억은 맥도날드다. 배는 고픈데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때 눈에 들어오던 특유의 간판 모습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 영화는 따로 쪽을 할애해 설명할 뿐 아니라 런던 기행의 곳곳에 등장시켜 발길을 편안하게 하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노팅힐을 품은 포토벨로 거리 설명에서는 물론이고 햄프스테드 히스나 여러 공원과 정원에서도 영화 속 장면들이 연결된다. 별 생각 없이 봤던 영화인데 런던의 곳곳을 참 많이도 담고 있다.
런던에서는 시민들의 평범성이 부각된다. 입헌군주제이긴 하지만 아직 왕이 있고 귀족제도가 살아있는 영국의 수도인 런던에서 소위 상위문화를 길어 올리기 보다는 보통사람들이 걷고 앉고 쉬는 장소들을 많이 소개한다. 이민자들이 많다는 포토벨로 거리나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트래펄가와 레스터―, 도심 속의 천연림인 햄프스테드 히스, 하이드 파크 등의 공원, 사설 정원 등이 그런 곳들이다. 바쁘게 지나쳐서는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데들이다. 다음에 좀 여유 있게 올 때 들러보자고 생각하고는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서 대신 마음에 일광욕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건축물의 수명은 때때로 철근과 시멘트가 아닌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결정된다(P.251).
글쓴이는 런던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파리 사람들을 파리지앵이라고 지칭하지 않지만 런던 사람들은 수시로 런더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애정 때문인지 영국 제국주의의 시작을 19세기로 늦춰 설명하는 문제를 보인다. 역사를 잘못 알고 있거나 왜곡하고 있다.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한 때만 해도 17세기이다.
이제 베를린이다. 책에 나오는 도시 중 가장 자주 갔고 머문 시간도 가장 길었던 도시가 베를린이다. 기업 실사를 위해 간 게 처음이었는데 물설고 낯선 데 가게마저 모두 일찍 닫는 바람에 저녁 식사 거리를 사지 못해 황당하던 기억이 난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독일 빵 브뢰첸을 잘 먹어서 독일 체질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통일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왠지 어둡게 느껴지던 베를린의 분위기가 해가 거듭되면서 밝아진다고 느끼기도 했다.
베를린을 소개하는 영화는 베를린 천사의 시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빔 벤더스가 유명한 감독이라는 얘기와 이 정도 영화는 봐줘야 지성인 아니겠냐는 주변의 부추김 때문에 봤었다. 같이 본 사람 중에는 어렵다는 평을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나는 이런 유의 영화가 나하고 꽤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도시의 경우에서처럼 이 영화 속 장면도 글 속에서 여러 차례 활용된다.
독일이 겪고 베를린이 겪었던 역사 때문인지 글쓴이가 이끄는 베를린 답사는 무거운 기운이 감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폭격으로 부서진 채로 남은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와 최근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추모 공원이 대표적인 무거움의 사례이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는 중심가에 있어서 베를린에 갈 때마다 들리다시피 했고 홀로코스트 추모 공원은 이곳이 문을 열던 해에 가봤다.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공원을 돌아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서베를린 시청사와 포츠담 공원에서도 정치로서의 역사를 이어 나가면서 묵직함이 계속된다.
베를린에도 밝은 분위기가 많은데 잿빛 차양이 드리운 듯한 이런 무거움 위주의 안내는 다소 걱정스럽다. 앞선 도시들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탓에 베를린에 대한 인상이 흐려질까 우려가 된다. 사실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만을 풍기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중심가에 있는데다 주변이 잘 정리된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서베를린 시청사나 포츠담 공원도 마찬가지고. 주말이면 열리는 벼룩시장이나 생기 넘치는 이민자들의 동네, 조용하지만 젊음이 깃든 훔볼트 대학이나 알렉산더 광장을 같이 소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 필이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공연장에 가보는 것도 좋았을 텐데.
마지막 도시는 라이프치히다. 책에 나오는 여섯 곳의 도시 중 영화가 곁들여 나오지 않음과 동시에 한 국가의 수도가 아닌 유일한 도시이다. 라이프치히에서는 교회, 대학, 카페를 포함한 음식점과 전승기념탑이 여행코스가 된다. 그리고 괴테, 바흐, 바그너, 멘델스존, 니체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예상했던 대로 라이프치히는 바흐가 맨 처음이다. 책에서도 설명하지만 바흐는 27년이라는 긴 시간을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칸토르로 일했다. 게다가 바흐의 사후 연주된 적이 없던 마태오 수난곡의 전곡 연주를 실현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되살린 멘델스존이 오래 살았던 곳도 라이프치히이다. 내가 라이프치히를 간 것은 온전히 바흐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바흐의 흔적을 보며 벅찬 감동을 느끼던 날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책에 나오지 않지만 교회에서 멀지 있지 않은 멘델스존 하우스도 같이 들러보면 좋을 테다.
특이하게도 여행코스에 학교가 들어간 것은 라이프치히가 처음이다. 아주 상세하게 소개하는 편은 아니라 참조하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라이프치히의 카페와 음식점을 얘기할 때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크게 거론되지는 않지만 시민들이 즐기는 분위기는 잘 묘사된다. 그래도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등장하는 지하 식당인 아우어바흐 켈러에서는 괴테와 파우스트가 여러 번 언급된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일을 기념하는 전승기념탑은 나도 보면서 그 규모에 놀랐었는데 글쓴이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
라이프치히의 곳곳을 둘러보는 여행담에는 문화와 역사가 켜켜이 쌓인 도시를 바라보는 글쓴이의 애정이 엿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그들이 품고 있는 두터운 퇴적층 같은 이야기를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음을 그는 전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시간은 질병이 이동을 가로막고 있는 시간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먼 곳을 다녀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큰 장벽으로 인해 여행 자체를 시도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얼마간의 시간이었든 해외의 타지를 돌아볼 수 있던 과거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팬데믹의 시기에 그런 시간을 누릴 기회를 다시 맞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럴 때가 돌아오리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런 날들을 위해 준비해야 할 때이다. 바쁘고 급하게 돌아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도시의 이곳저곳을 즐기고 같이 호흡할 수 있도록 머리와 가슴 속에 차분함을 채워 넣어야 할 시간이다. 분명히 올 그런 날들과 하나가 될 때를 위해 이 책은 긴 숨을 불어넣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