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 강한 작품이다. 완독 후 해설까지 읽고 보니 다니자키 문학(삶)에 대한 이해가 수월해짐에 따라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극대화된다. 작품에 작가의 삶이 투영되기 마련이라지만, 한 치의 가감도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는 유려한 문체는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다. 그것은 심지어 다음의 착각까지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뭐지? 일기인가? 적어도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군.' 실제로 작가 자신이 고백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삶 자체가 그랬다. 여성을 사모(숭배)하지 않고서는 그의 문학적 도약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예술에 투신하고자 하는 지독한 자기애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숙명을 일찌감치 간파한 천재 작가의 실천적 영악함과도 일맥상통한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에 이르면 그가 얼마나 일본 고전문학에 통달했는지도 알게 된다. 여체 숭배, 악마주의, 마조히즘적 색채에 가미된 구전문학의 해박함은 그것의 특성 상 몽환적 신비감은 물론이고 독자로하여금 지적 욕구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액면 그대로의 정보를 습득했다는 순간적 만족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시공간적 배경, 구전문학이 성행하던 당시의 일본 사회와 일본인들의 생활상은 어땠는지 또 그에 따른 문학(예술)사는 어땠는지 등등 하나둘 발아된 궁금증은 어떤 형식으로든 그 해답을 얻기 위한 행동을 추동시키기 마련이다.
구전문학의 인물, 헤이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시작하는 소설의 큰 줄거리는 이렇다. 색광인 헤이주는 자신의 여성 편력을 은근 자랑하며 허세를 부리던 어느 날 젊은 좌대신의 장난끼 섞인 추궁에 못 이겨 한때 자신의 여자였던 미모의 양반집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흘린다. 그 후 좌대신은 그녀의 집을 수시로 방문하고, 헤이주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남편은 그녀보다 50살 연상인 80대 노인으로 좌대신은 그에게 족보상 백부였으나 신분으로는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나무 같은 존재였던 것. 그렇게 노인은 조카뻘인 좌대신의 은밀한 계획에 말려들어 하루아침에 부인을 강탈당한 후 부정관 수행까지 감행하며 아내를 잊으려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죽고만다. 한편 아내를 잃은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 시게모토 역시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생이별한 후 내내 그녀를 그리워하면서도 섣불리 찾아가거나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40대가 되어서야 뭔가에 이끌리듯 깊은 산속을 거닐다 우연히 한 여승을 만나는데...
라이벌 대신의 중상으로 좌천당한 사람의 혼령의 저주로 좌대신은 물론 그의 자손까지 급사, 단명한다거나 그래도 개중에 선량한 자손에겐 자비를 내리는 점, 헤이주의 자업자득인 이른 죽음 등을 보다 보면 다분히 권선징악적이어서 일면 통쾌하기도 하다. 또 불교 용어라든가 수행 과정, 혼령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여성을 일종의 연애 게임의 말처럼 여기는 호색한 헤이주, 아름답고 젊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내내 안타까워하는 노인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는 숨도 안 쉬고 읽도록 만드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어서 빨리 다니자키의 다른 작품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