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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나

[도서] 여우와 나

캐서린 레이븐 저/노승영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3점

**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함 **

 

 

동화 느낌의 표지처럼 그런 분위기로 시작한다. 유쾌하고 발랄하게ㅡ 
주인공의 시선뿐 아니라 여우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흐름이 좋다. 글자를 읽는데 영상을 보는 듯 웃음이 터진다.
캐서린을(작가) 회오리손이라 부르는 여우.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우리 여우라 칭한다. 언젠가 이름을 지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우리 사이에 놓인 것은 2미터와 가냘픈 물망초 한 포기뿐이었다.

표지에 있는 식물은 물망초이다. 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10대의 중반. 시와 꽃말을 좋아하던 소녀는 식물의 이름에 끌렸으며 꽃말에 확 꽂혔다지. 예쁘게 느껴지던 이름은 의미를 알게 되니 한없이 슬픈 느낌이었다.

그때는 그러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단지 슬픔만은 아니다. 복잡 미묘하다 말하지만 어떤 표현으로도 감정은 글보다 미세하고 섬세하게 흐르는 것이라.

누구도 우리 여우를 모자로(어린왕자) 착각하지 않을 만큼

명확하게 묘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동화풍이 끌림이었으나 이야기는 일기인 듯 자서전인 듯 작가의 어린 시절 상처부터 레인저 시절의 추억을 비롯한 삶을 풀어낸다. 참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상처를 말하고 있다.
사색을 담은 글들이 편지인 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실제로 독자에게 말하는 형식도 좋다.

소도시에서 구입한 서부의 잡초는(책 제목) 농부에게 한 번이라도

저주받은 적이 있는 모든 식물의 전과 기록 일람표였다.

재미있고 재치 넘치는 표현들이 시선을 끌며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밭쥐 숲(웃음 터지는 잡초 숲에 대한 이야기)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에 남는ㅡ 어떤 것에 대입해도 옳은 철학적 문장이 파고든다.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잡초를 향한 그녀의 사색적인 메시지이다.

그는(여우) 열 개의 다리와 세 마리의 발광한 동물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검은 개 두 마리(직접 읽어야 제맛!)
캐서린이 여우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쌍무지개였지만 꽈아는(나는 이 여우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음) 아마도 이날 이후로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관계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여우 학살이 벌어지던 날 누군가는

뒤로 물러서 있었으리라.

어쩌면 어린왕자를 읽고 감동받았을 테지.

인간은 그 어떤 생물보다 잔인하다는 표현에 동의한다.(캐서린의 표현 아님) 죽여야 할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밖에 없는 건 아니었으리라.

인간의 본능은 원래 그런 것이런가? p.213 근사하다며 감탄하는 학생도 공감되지 않는다. 저런 광경이..? 근사해 보인단 말인가! 저절로 고개를 돌렸으리라. 강자의 성취보다 약자의 고통이 먼저 느껴지니 어쩔 수 없다.

때로는 이념적인 부분이 그렇게 다가오기도 한다. 야생의 생태계. 그것을 자연적 상태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무엇일까? 어쩌면 인간이 출입할 수 있는 상황과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이미 깨진 것은 아닐까?

꽈아는 보송보송한 나뭇잎 위를 민달팽이와 맞먹을 만큼

신진대사가 느린

두 짐승 간의 숨쉬기 시합을 참고 볼 인내심이 없었다.

#새끼 사슴(야생동물과 생태계 그리고 생물학자)
진지하게 펼치는 야생의 이야기는 때로는 의문과(일정 부분 납득이 되기는 함) 안타까움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만약 조난 당한 인간이었다면 달랐겠지.

인간과 새끼 사슴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이란 말인가? 야생에서 삶을 갈구하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생명체임에는 두 종 모두 같을진대ㅡ

#리버캐빈스에서의 마지막 날. 캐서린은 회상한다.

1년 전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았던 순간을ㅡ 세 여자의 수다에 별로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둥지라는 단어가 대화에 참여하게 만든다. 사실 그녀가 풀어놓은 새에 관한 스토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듯한 내용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캐서린의 흰머리수리 일화는 직접 본 것이라 하겠다.

한 여자가 말한다. 인간은 결코 짐승이 아니라고... 뭔 헛소리? 짐승만도 못 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단 말인가? 비단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지상에서 살고 있는 짐승이 아무리 어리석은 짓을 해도

인간의 발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ㅡ모비딕 中

모비딕을 인용한 문장이 답을 한다. 캐서린이 의도한 방향은 들소에 대한 호너데이 박사의 생각을 향한 것이지만..

책의 중반부에서 캐서린이 느꼈을 감정은 물망초가 간직한 의미를 스며들게 한다. 솔직히 독자인 나도 당황했으며(벌써? 이런 느낌) 부디 제발 간절하게 바랐기에 그녀의 기쁨이 오롯이 글을 통해 전달되며 나 또한 같은 감정을 느꼈다.
꾀 많은 여우. 이미지만으로 자리 잡은 우화 속 표현이 아니었네.(p.224)

분명히 깨달았다.

여우 한 마리는 나머지 모든 여우와 마찬가지일 수 없다는 것을ㅡ

인간이 문명사회를 이루고 산다 하여 야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걸까? p.324 인간과 여우의 관계 변화는 인간 종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야생동물이 약한 먹잇감을 노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은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으며

우리 관계의 토대는 대화가 아니라 함께한 활동이었다.

자연적인 요소들이 꽃이나 나무처럼 식물과 함께일 때 숲은.. 어쩌면 밀림마저도 아름답다. 그러나 움직이는 생물이 등장하는 순간 생태계는 혹독하고 험난한 야생의 모습을 띤다. 곤충과 초식동물까지는 괜찮을지 모른다. 육식동물이 등장하면서 생태계는 피라미드 형태로 바뀌는 것이니까.

우리는 둘 다 해의 온기와 달빛을 흠모했다.

우정을 다지는 데는 그거면 충분했다.

야생 붉은 여우의 수명은 길어야 5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말은 대부분이 추측하듯 이별이지만 아픔은 잠시 스치고 큰 위로가 잔잔히 번진다.
작가의 삶을 변화시킨 여우 한 마리. 그저 여우야~ 라는 호칭이었지만 더없이 다정한 부름이다. 꽈아도 그리 느꼈으리라.

이제 나의(캐서린) 관심사는 우리 여우가 아니라 여우들이다.

그것은 그가(꽈아) 남긴 유산이며 우정의 핵심이다.

여우와의 인연이 자연과 더불어 감동을 전하리라 예상했지만 그녀의 삶 자체가 마치 대자연을 품은 듯한 웅장함이다.
도서는 영화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실제 캐서린의 오두막이 영화에 등장하려나?

ㅡ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ㅡ

명작으로 탄생할 영화를 기대하며 기다리련다. p.426~427 영상으로 보면 백퍼 주르륵 각이다. 까치의(꽈아에겐 배불뚝이라 불렸고 캐서린에겐 테니스공이라 불림) 희생 또한 우정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찡한 감동을 전하리라.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으로 작성한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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