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한줄 카피 : 시대를 뛰어넘는 이정표가 되어줄 참된 멘토, 공자와의 만남
나는 천성이 비뚤어진 청개구리인지 무조건 가르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 드는 책이 조금싫었다.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하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날 줄 알아 하며 으름장을 놓는 듯한 몇몇 책에 기가 질려서이기도 했고 책 속에서 과연 길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원론적인 의문 때문이었다. 책이 제시하는 길을 누구나 갈 수 있다면 실패한 인생을 살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물론 책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다 옳다. 맞는 소리이고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괜찮은 인생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책이 말하는 대로만 살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인 셈인데,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살 수 없을까? 그건 바로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마음을 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을 울리지 않는가? 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구구절절 옳을 말을 하는 책 선생님인데 왜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까. 나는 그 중의 하나가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그저 '옳은 소리'만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옳은 소리.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옳은 소리. 우리 나라에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는다 는 속담이 있다. 이는 부지런하면 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근면함을 권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결국 일찍 일어나는 벌레이다. 그렇다면 벌레에게도 이 속담이 근면함을 권장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을까. 예시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새와 벌레처럼 인간은 모두 다 같지 않고 제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지닌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데서 자며 같은 생활방식을 영위하는 가족 조차도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다 같을 수는 없다. 하물며 나고 자라온 환경과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는 것이 맞는 사람도 있고 한낮에는 잠을 청하고 밤에 많은 것들을 창작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면 때로 이런 다양성을 간과하고 그저 누구나 다 아는 옳은 소리만을 (그것도 아주 독선적으로) 나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책은 마음을 울리지 못했고 그저 한 번 읽고 제목마저 희미하게 잊혀지는 책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많은 자기계발서가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생의 멘토를 자처하고 나선 책들 중 재미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앞에서 했던 소리를 단어와 문장만 바꿔서 또 한번, 그리고 또 한번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이 책을 꼭 다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가 없다 보니 읽다가 책장을 덮는다. 혹은 한 두어장 읽어보다가 그대로 덮고는 펼쳐보지도 않는다.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 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일은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하니 결국 재미가 없고 얻는 것이 없어서일 거다. 아무리 가치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도 지나치게 계몽적이어서 책을 읽으면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애초에 읽지를 않는데 그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쓰다 보니 내 리뷰 또한 길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서 '너 또한 그렇지 않느냐'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ㅠㅠ)
어쨌든 이렇게 자기계발서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에 가득찬(?)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제목은 그럴싸한데 이 책은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재미가 있을까? 나는 이 책으로부터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수많은 물음을 던지며 책 표지를 들여다보니 '공자'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공자라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그 공자님, 유교 사상가인 그 공자님,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종종 성어로 만나보았던 그 공자님이 아닌가. 솔직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 공자님의 말씀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고교시절 들었던 성어들은 시험공부할 때에만 달달 외웠기 때문인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고 공자의 <논어>는 들어봤지만 읽지는 않았다. 고전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건 고전도 너무 고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책을 읽기도 전부터 고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글쓴이의 머리말을 읽고, 총 10장으로 나뉜 책의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기면서 공자에 대한 나의 <고루하고 재미없다>라는 인식은 완전 틀렸음을 가슴 깊이 느꼈다. 그것은, 한 번도 제대로 공자를 접해 보지 못한 나의 주제넘은 편견이었고, 더 알려고 하지 않은 오만과 무지함이었다.
일단 본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며 느낀 소감을 정리하고 싶다. 난 예전에는 머리말을 읽지 않고 곧장 본문으로 넘어가는 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머리말을 주의깊게 읽게 되었다. 그것은 머리말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응축되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난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저자는 공자의 지혜를 통해 원하는 삶을 사는 비결을 제시하기 위해 마음 먹은 후 공자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기법을 택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옛사람과 현대인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닌 공자를 새로운 모습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동안 내가 공자에 대해 갖고 있던 '오래된 성인'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주었다. 그것도 제3자의 눈을 통해 본 공자가 아니라 공자의 가장 오래된 제자였던 자공의 눈을 빌려옴으로써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처럼 그의 가르침을 좀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국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나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공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고 또 어렵지 않게, 쉽고 재미있게 공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수많은 공자의 가르침이 나온다. 그의 가르침은 여겨 보지 않았기에 죽은 지식에 불과했던 이전과는 다른 감회로 내게 다가왔다. 자공을 서술자로 하여 많은 예화들과 함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공자의 삶과 지혜를 조명했기 때문에 소설책을 읽듯이 내가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공자 라는 한 인간에 대해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 마음에 파문을 던져준 구절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뜨끔했던 것 같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눌러앉아 엉덩이를 문대며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하며 마음 속으로만 애타하던 내 자신을 따끔하게 꼬집는 말이었기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하고 그 상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건만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외부로만 탓을 돌리고 있었다는 걸, 변해야 할 것은 내 주변보다는 나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 이야기였다. 너를 둘러싼 상황은 그리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상황을 바꾸기보다는, 내 주변에서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섭섭해하고 원망하며 속절없이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듯한 공자의 목소리가 마음 속에 들려오는 듯 했다. 덕분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인간의 다양성을 떠나 누구에게도 통용되는 당연한 진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에는 옮기지 않았던 내 자신을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치욕을 당해도 그것에 마냥 분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삼아 자기자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은 젊은 날의 공자가, 또 스승의 가르침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제자 안회와 자공이 괜히 후대에까지 이름을 떨치는 인물들이 된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편 공자는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인생의 아름다움을 둘러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일에 바빠 정작 자신이 사는 주변의 아름다움에 무감해진 자공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사는 동안의 '행복'을 누릴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 그리고 너희 삶을 서정적으로 만들어 가거라 하며 제자들에게 가르친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 또한 과거에 당장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리느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을 뒷전으로만 미루고 또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놓쳤던 것이 아닌가 하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올가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보내지 못했던 시간. 그러나 마음을 먹고 세상으로 나서보니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가을의 온갖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공자의 말을 듣고 '삶이 이토록 아름다운가'하며 새삼 즐거움을 느꼈던 자공과 마찬가지로 '가을이라는 계절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생각하며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하나에서도 계절의 얼굴을 발견하며 즐거워했던 것 같다. 또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기에 더 그랬고. 그 가을이 지나고 이제 겨울이 왔지만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던 것 같다. 올 가을은 정말 잊지 못할 즐거운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고. 눈에 들어왔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소중했었다고. 그리고 이때의 재충전을 발판으로 삼아 이런 즐거운 기분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하며 공자가 자공에게 주고자 한 것을 이미 느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공자는 그저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일 뿐만 아니라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는 풍부한 감성의 예술가이기도 했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여유를 잃지 말라, 는 말도 지금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조바심내며 앞으로의 내 삶이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불안한 의구심에 사로잡혀 조금씩 조금씩 나를 좀먹던 나에게 매우 위급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던 공자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깊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떨며 상대에게 맞서려 들었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지 않았을까. 공자의 이런 모습은 요즈음 화두가 되는 '긍정적인 인간상, 긍정의 심리학'과도 일맥상통하며 공자의 가르침이 현재에까지도 충분히 유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매사 걱정이 많고 고민이 많은 나로서는 어려운 상황이 닥쳐올 때마다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구절이 아닌가 싶어 얼른 수첩에 적어두었다. 물론 책을 한 번 읽었다고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짜증부터 내고 '왜 나에게만!'하며 불평불만을 하기 이전에 이 가르침을 한 번 더 읽어본다면 조금씩 조금씩 다른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고.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공자의 가르침이 앞서 말했던, '단순히 옳은 소리, 누구나 할 수 있는 옳은 소리'라고만 여기지 않았던 것은 제자들의 성격에 따라 또 맞이하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발휘했던 공자의 융통성과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때문이었다. 공자는 두 제자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으나 충동적인 성향의 자로에게는 조금만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라는 답을, 큰일을 앞에 두고 위축되는 성향의 염구에게는 곧바로 일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답을 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묻는 자공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통일된 기준으로 가르치는 것이 꼭 좋은 교육은 아니며 오히려 학생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고(p.86). 또한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같은 방식의 대처를 고집하지 않았고 일의 경중과 급박함에 따라 그동안 고수해왔던 대응과는 다른 대응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자는 많은 군주들이 위계를 중시하고 절대군주로 군림하고자 하는 와중에도 아랫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섬김의 리더십(서번트 리더십)'과도 같다. 고루하고 오래된 옛사람으로만 여겨졌던 공자가 몇세기 이후에나 주목받게 된 섬김의 리더십을 그 시대에 이미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공자는 이처럼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상황의 다양성을 이해할 줄 알며 리더임에도 자신을 낮출 줄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공자의 가르침은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지금에 와서도 진정한 멘토의 말씀으로 여러 사람에게 본이 되고 지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제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공자의 여러 가르침을 받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책 속의 공자는 내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공자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던 공자는 어떤 일에도 허허허 웃으며 사상을 설파하고 인과 예를 주장하고 법도를 중시하며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말 그대로 4대 성인의 이미지였다. 그 어떠한 상태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는 완벽한 인간, 그것이 내가 가진 공자 이미지의 전부였다. 그러나 요 며칠간 알게 된 공자는 달랐다. 제자들이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때면 크게 화를 내기도 했고 (책을 읽다 보면 서술자인 자공이 '선생님이 화를 내시지는 않을까 걱정하였다'라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때로는 간악한 이의 꾐에 빠져 궁지에 몰리기도 하였고(양화와의 불편한 만남, p.80), 예의에 어긋나는 대우를 받고 한탄하며 제자 앞에서 그 대상(을 향한 저주의 말("하늘이 그녀를 미워하리라. 하늘이 미워하리라." p.381)을 퍼붓기도 하였다.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인과 예의 길로, 또 현재를 사는 나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던 공자와 화내고 궁지에 빠지고 때론 저주를 퍼붓는 공자가 같은 사람이라니. 공자는 군자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공자가 좋은 멘토로서, 좋은 스승으로서 훌륭한 점은 바로 여기에서 그의 완벽하지 않음에서 빛을 발한다.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또한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많은 제자들이 거리감 없이 더 그를 사랑하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공자의 이런 비범하고도 평범한 면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불멸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게 바로 선생님의 훌륭하신 점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의 위대함은 그분이 신이 아니라 평범한 분이라는 데 있습니다.
선생님은 꿈이 원대하고 학식이 비범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평범함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토록 친밀하실 수 있었고,
우리도 더욱 기쁘고 즐겁게 선생님을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p.382, 담대자우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구절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