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여자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내 친구였다니.
두 사람은 이미 헤어졌고 그녀에게는 새 애인이 생겼다고 한다.
요컨대 지금 나에게 남은 선택은 남편을 용서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밖에 없다." (18p)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상황이라서, 잠시 소설로 착각했어요.
근데 이 책은 우에마 요코 작가님의 에세이예요. 불륜 사실은 남편의 고백으로 알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일 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가진 뒤에 이혼했고, 지금은 어린 딸을 키우며 오키나와에서 십 대 여성을 조사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저자는 "슬픔이라는 건 아마도 살아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결 작아진 상처는 나의 일부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30p)라고 말했어요. 《바다를 주다》 는 우에마 요코 작가님의 아픈 상처뿐 아니라 소외된 오키나와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실화예요. 그 이야기는 꼭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저자는 "나는 조용한 방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건넨다. 나는 전철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넘긴다. 나는 강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준다. 이 바다를 혼자 품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당신에게, 바다를 준다." (246p)라고 말했어요. 슬픔과 고통, 절망은 나눌수록 작아질 거라고 믿으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 생각났어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 ... /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요코라는 사람은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인 것 같아요. 솔직하고 사려 깊은 그녀를 보면서 참 좋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무엇보다도 그녀가 건넨 바다로 인해 가슴이 일렁였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히며 산산히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눈물이 바다에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너는 어린 시절에 상처 하나 없는 인생과,
친절하게 대한 사람에게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속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른이 된 인생 중 어느 쪽이 좋아?"
"당연히 어른이 되는 편이 좋지. 너덜너덜해지든 어쨌든 간에.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낫잖아." (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