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고립되어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상황에서 책을 단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9p)
설마 단 한 권의 책도 필요 없다고 말하진 않겠죠?
그럴 리 없기를 바라지만 요즘처럼 디지털 중독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에요.
질문의 요점은 책으로 상징되는 문학의 본질을 묻고 있어요. 사색하는 사람에게 문학은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문학을 읽는 시간은 언제나 가치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문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가져갈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뭘 고를지를 고민하느라 주저하게 될 거예요. 바로 그 문학에 관한 역사를 다룬 책이 나왔어요.
《문학의 역사》는 존 서덜랜드의 책이에요. 영어 제목은 "문학의 작은 역사 A LITTLE HISTORY of LITERATURE"인데, 저자는 이 책에 담을 수 있는 역사가 워낙 방대하므로 신중하게 고른 내용이라고 설명하네요. 이 작은 역사는 매뉴얼(이걸 읽어!)가 아니라 조언(아마 당신도 이 책을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결정은 당신 몫입니다.) 정도에 해당된다고 밝히고 있어요.
첫 장에는 연대표로 보는 문학의 역사가 나와 있어요. 기원전 20세기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 「길가메시」 부터 20세기 중반 이후의 세계문학을 정리한 내용이라서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도서목록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유명한 고전 작품들을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시대별로 찾아보면 유익한 공부가 될 거예요.
이 책에 등장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모두 영어로 읽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국경 없는 문학이 가능해진 요인에는 특정 세계어들의 지배 덕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영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가지는 힘과 함께 해왔고, 세계어가 되었어요. 2000년 전에는 라틴어가 주류였고, 19세기는 영국의 세기,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진행 중이에요. 원래 문학은 국경이라는 언어가 달라지는 경계에서 멈추었고, 아주 적은 수의 외국 문학만 번역의 장벽을 넘을 수 있었어요. 번역은 본질적으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이자 언어학자인 앤서니 버지스는 '번역은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전체를 전달하는 문제다.'라고 했고,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는 번역하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354p) 라고 했어요. 이러한 번역의 문제는 세계문학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문학의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바뀌게 될 거예요. 저자는 문학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세 가지 기본 조건을 언급하고 있어요. 첫째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문학은 훨씬 많아질 것이고, 둘째 문학은 기존과 다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올 것이며, 셋째 새로운 포장으로 우리에게 올 거라는 거예요.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도서관을 통해 엄청난 양의 문학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온라인을 통해 모든 신간과 거의 무한한 중고책을 얻을 수 있어요. 다만 인터넷에 의존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독자는 문학에 매력을 느끼기 힘들 거예요. 그래픽 노블, 웹툰이 활성화되면서 영화로 쉽게 각색되고, 다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문학이 등장한 것도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적응이라고 봐야겠네요. 독자는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입장에서 협업하여 파트너로서 상호작용적 문학을 만들면서 저자와 독자의 경계가 사라졌어요. 어떤 형태로든 바뀌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저자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문학이 지닌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고, 최악의 일은 거대한 정보 아래에 파묻히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인간 정신의 놀라운 창조적 산물인 문학이 변화에 적응하여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문학은 위대한 마음과 나누는 대화이며, 이러한 마음의 만남이 지금 우리 존재의 핵심을 이룬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무엇보다도 문학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가 문학 읽는 법을 잘 배울수록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문학과 함께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며 살자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