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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도서]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저/김난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올해는 추석연휴가 꽤 긴 편이에요.

길어서 좋을 수도 있지만 그리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거나 혹은 괴롭거나, 각자 사정은 다르니까요.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는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에세이집이에요.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는 저자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비롯한 연애 소설로 사랑을 받아왔는데, 이 책은 자신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에쿠니 가오리가 결혼한 지 2년이 되어가는 가을에서 3년이 되어가는 가을까지 쓴 에세이를 모은 책이라고 하네요. 시기적으로 결혼 2~3년차는 신혼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달달함보다는 애잔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네요. "이곳에서의 생활은 조금은 슬프고, 대체로 평화롭지만 불행하다." (11p)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콩깍지가 벗겨진 것 같아요. 연애는 낭만적일 수 있지만 결혼 생활에서 낭만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아요. 원래 낭만이란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야 커지는 법. 그래서 결혼에 대한 환상은 직접 겪어보면 알아서 깨지는 것 같아요.

저자에게 결혼생활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요. 공원과 주말.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과 둘이 공원에 자주 갈 정도로 좋아하는 장소여서 언젠가 같이 살 집은 공원 옆이면 좋겠다고 말했대요. 실제로 널찍한 공원 옆 좁다란 아파트에서 신혼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은 아주 가끔 공원에 산책 가자고 한대요. 결혼하고 나서는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공원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오히려 혼자 더 많이 가게 된 거예요. "가끔은 공원에도 간다. 공원은 계절과 시간과 요일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12p)

월요일은 늘 진이 빠져서 축 늘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에너지를 거의 주말에 소모하기 때문이래요. 저자는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주말이란 개념이 없었는데 남편을 만나면서 주말에만 놀 수 있다보니 주말이 좋아졌대요.

"주말은 늘 남편과 함께 지낸다. 그리고 거의 주말마다 티격태격한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폭풍우 같은 싸움까지. 우리 둘 만의 남쪽 섬에서.

어렸을 때 동생과 싸움을 하면, 엄마는 늘 그렇게 싸움만 할 거면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들러붙어 있으니까 싸우는 거라면서.

남편하고도 그렇다. 남편은 어질러 놓기만 하고 치울 줄 모르는 데다 만사에 무심하고 감정을 경시(한다고 생각한다)하는 경향이 있고,

나는 참을성이 없고 감정적이고 양보를 모른다(고 남편이 그런다). 그래서 우리 부부 사이에는 싸움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정말이지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둘은 때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찍한 것일까). 마침내 남쪽 나라 섬에서의 바캉스는 끝이 나고 평일이 온다.

... 우리는 많은 주말을 함께 지내고 결혼했다. 늘 주말 같은 인생이면 좋을 텐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하루하루가 주말 같다면 우리는 보나마나 산산이 조각나리라는 것을.

남쪽 나라 섬에서의 산산조각.

하기야 다소 동경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42-44p)

평일에는 바쁘고 피곤한 남편과는 거리를 두다가 주말이면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으니 좋다고 말하면서도 붙어 있어서 싸우게 되어 힘들다는 것, 이것이 결혼의 민낯인 것 같아요. 좋은데 싫고, 사랑하는데 미워하는 애증의 관계랄까요.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인 줄 알았다가 결혼한 뒤에야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결혼생활인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진 않아도 엄연히 집필 활동을 하는 작가인데, 집에 있다고 해서 전적으로 살림을 도맡아 하는 건 공정하지 않잖아요. 남편에게 "나, 9월에 여행할 거야."라고 말했더니 대뜸 "그럼, 밥은?" (47-48p)이라고 말해서 서로 어안이 벙벙했다는 일화는 극현실적인 장면이에요.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건 연애할 때, 그것도 사랑에 푹 빠져있는 순간뿐이라고요. 연애는 다른 장소에서도 같은 풍경을 보는 것이라면 결혼은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있는 것. 중요한 건 사랑의 감정이 얼만큼 있느냐일 거예요.

"결혼은 'struggle'이다. 만신창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상처도 마르니, 일일이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아무튼 들러붙어 자는 것이 바람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는 음악이 또 바람이 되어 준다. 그런 소박한 일들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사랑은 관철할 수 없다." (79p)

그러니까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라는 질문은 사랑과 결혼에 관한 에쿠니 가오리만의 화두였네요. 연애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으로 유지되고, 결혼은 변형된 사랑에 적응하며 유지되는 것 같아요. 물론 온갖 이유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더 크다면 킵고잉, 아니라면 스탑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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