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속에서 일그러진 현실이 보일 때...
뭔가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브랜던 샌더슨의 대표작 <미스트본> 3부작.
왜 그를 영미 판타지문학의 대가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여러 판타지 소설을 읽어봤지만 브랜던 샌더슨이 창조한 세계는 정말 놀랍습니다.
우와, 엄청난 세계를 보여주는 엄청난 두께의 책~~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는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책이 주는 무게감도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은 <미스트본>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 '마지막 제국(The Final Empire)'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2부 '승천의 우물(The Well of Ascension)'과 3부 '영원의 영웅(The Hero of Ages)'이 남아 있다는 뜻.
문제는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라서 당장 다음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럴수가... 낭패로다... 완결된 소설인데 굳이 시간차를 두어 출간하는 이유가 뭘까요. 독자들을 안달나게 하려는 건가요.
휴우~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이해 못하실 수 있으니, 미리 말해둘게요.
성격이 다소 급하다거나 궁금한 건 도저히 못 참는다 싶은 분들은 3부작이 모두 출간된 후에 읽으시길 바랍니다.
이 소설은 특이한 구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떤 인물의 일기가 처음 등장합니다.
"때때로, 내가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영웅이 아닐까 봐 걱정스럽다.
... 자신들의 전사, '영원의 영웅', 자신들의 구원자가 스스로를 의심한다는 걸 알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그들은 전혀 충격받지 않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마음속으로는 그들도 궁금해할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보고 있을까?" (11P)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요?
책을 읽다보면 그가 마지막 제국의 신(神) 로드 룰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토록 인간적인 고뇌에 빠진 인물이 현재의 로드 룰러라고 하기엔 너무나 격차가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승천의 우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영원의 영웅'이자 세계의 구원자가 불멸의 괴물로 변한 걸까요?
그의 마지막 일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만약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권력은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리고 싶다. 권력의 사슬에 묶이지 않도록 애써라.
테리스의 예언자들은 내가 세계를 구할 힘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세계를 파괴할 힘 또한 갖게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 이런 것이 사람이 질 수 있는 짐일까? 사람이 저항할 수 있는 유혹일까?
나는 지금은 강하다고 느끼지만, 내가 그 힘을 건드렸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분명 세계를 구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세계를 가지려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세상이 다시 태어나기 전날 저녁에, 얼어붙은 펜으로 이런 공포를 끼적인다.
라셰크는 나를 증오하며 지켜본다. 동굴을 위에서 맥박 친다.
내 손가락은 떨린다. 추위 때문이 아니다.
내일, 다 끝날 것이다.' (634P)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이 일기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불멸의 지배자 로드 룰러가 통치해온 천 년 제국에서 반역을 꾀하는 스카의 지도자 켈시어와 열여섯 고아 소녀 빈이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일기에 적힌 내용들을 전부 이어서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절대 권력자의 등장으로 세상은 재와 안개로 뒤덮였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진정 그들을 구원할 영웅은 누구일까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권력에 집착하는 헨리 4세에게 남긴 명언입니다. 문득 이 말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로 이어진다는 걸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한 명의 영웅이 아니란 것도...
판타지 세계 덕분에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용어 설명입니다.
* 스카(SKAA) : 인간 계급 중 최하층민으로 귀족의 농노나 도시의 노동자가 이에 해당됩니다.
* 루서델 : '미스트본'의 배경 세계 스카드리알의 중앙 지배지 안에 위치한 수도 이름.
* 오블리게이터(OBLIGATOR) : 마지막 제국에서 온갖 일의 공증을 서는 공무원이며 로드 룰러를 섬기는 종교적 지도자. 그들은 로드 룰러의 교의를 귀족과 스카 양쪽 모두에게 가르치며 눈 주위에 복잡한 문신을 하고 있음. 프렐란(PRELAN)은 고위 오블리게이터.
* 심문 캔턴(CANTON OF INQUISITION) : 로드 룰러의 정부 조직 중 하나로 강철 미니스트리 산하에 있으며 알로맨시(ALLOMANCY) 사용자들 사이에서 경찰 역할을 함.
* 알로맨시(ALLOMANCY) : 스카드리알에서 일종의 마법 역할을 하며, 알로맨시를 사용하려면 원하는 힘을 끌어내는 금속을 먹고 태워서 활성시켜야 함. 천 년쯤 전에 로드 룰러가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귀족들에게 준 신비로운 힘.
* 강철 심문관(STEEL INQUISITION) : 로드 룰러가 인간을 변형시켜 만든 생물로 강철 미니스트리를 구성하며, 두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커다란 대못이 관통하는 끔찍한 외형을 지님. 알로맨시의 사용자들을 감찰하고 통제함. 즉 귀족들의 감독관.
* 미스트본(MISTBORN) : 거의 대부분 대가문 귀족출신이며 여러 가지 금속을 태울 수 있는 알로맨서.
* 미스팅(MISTING) : 알로맨시를 사용하는 알로맨서의 일종으로 한 가지 금속만 태울 수 잇기 때문에 팀을 짜서 서로의 능력을 보충하며 일할 때가 많음.
* 스모커(SMOKER) : 구리를 태우는 알로맨서로 다른 알로맨서들을 시커(SEEKER)의 탐지 능력에서 숨겨주는 역할을 함.
* 시커(SEEKER) : 청동을 태우는 알로맨서로 알로맨시가 사용되면 그 진동을 찾아내는 힘을 지님.
* 틴아이(TINEYE) : 주석을 태우는 알로맨서로 오감을 더 예민하게 향상시키는 능력이 있음.
* 수더(SOOTHER) : 놋쇠를 태웅는 알로맨서로 감정을 달래고 누그러뜨리는 능력이 있음.
* 써그(THUG) : 폭력배, 깡패라는 뜻으로 백랍을 태우며, 육체적인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음.
* 안개유령(MISTWRAITH) : 로드 룰러가 만들어낸 생물종으로 스카들에게 공포심을 유발시킴.
* 끊다(SNAP)라는 표현은 알로맨시의 힘을 얻는 과정을 뜻하며, 미스팅이나 미스트본이 심한 스트레스나 고통, 죽음에 가까운 상황을 겪을 때 일어남.
* 하스신의 갱(PITS OF HATHSIN) : 루서델 근처에 있는 동굴계로 스카들의 강제 노동 수용소로도 쓰임. 그곳에서 매우 중요한 금속 아티움을 캐냄. 바로 이 곳에서 탈출한 유일한 사람이 켈시어라서 그를 '하스신의 생존자'라고 부름.
* 승천(ASCENSION) : '승천의 우물'의 힘을 얻는 과정으로 로드 룰러는 승천의 우물 덕분에 세 가지 금속술을 쓰고 거의 전능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됨.
* 디프니스(DEEPNES) : 로드 룰러가 승천하기 전 스카드리알 세계를 덮고 있던 사악한 그림자이며 식물을 점차 멸종하게 만든 요인임.
* 오어쇠르(ORESEUR) : '승천' 후 로드 룰러가 창조한 종인 칸드라(KANDRA)의 일원으로 칸드라는 몸을 재배열하여 다른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는 능력이 있음.
* 헤이즈킬러(HAZEKILLER) : 알로맨서를 죽일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비(非) 알로맨서 자객.
* 재의 산(ASHMOUNT) : 마지막 제국의 거대한 화산들로 로드 룰러가 '승천의 우물'에서 힘을 얻을 때 만들어져서 이후 마지막 제국의 하늘에는 재가 떨어지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