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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든 루스

[도서] 담배를 든 루스

이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책의 화자는 날씨연구소에서 일하는 휴학생 리즈이다. 20대 초반인 리즈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이별 후 어머니, 남동생과 살다가 기억도 안나는 아주 어릴 적에 남동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남동생에 대한 슬픔에 겨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가 참 힘들었던 리즈.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리즈는 이미 어머니를 잃었다. 고아나 다름없는 그녀는 동물인형극 알바, 식당알바, 술집알바, 박물관알바 등 알바의 베테랑. 언제나 부지런히 일해도 사는 곳은 재개발 시작 전의 달동네 옥탑방이다.

 

리즈와 대학동창으로 부자였던 친구 런더너. 런더너가 기부받고 싶으면 이정도 수고는 해야 한다며 기부여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시키는데 리즈는 자존심이 상하여 인사를 하지 않고 런더너와 결별한다. 런더너와 결별후 그 길로 휴학을 하게 된 리즈. 리즈의 생각은 이렇다. “부자들은 늘 그런 식이었다. 가진걸 자랑하지만 쉽게 내놓지는 않았다. 사랑도 그랬다. 줄 것처럼 약올리다가 미끼를 물면 조롱했다. 강자는 모두 그랬다. 어쩌면 나와 그 애의 관계는 고마워하면 주겠다주면 고마워하겠다는 서로 간의 팽팽한 대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해맑은 얼굴로 생색내는 모습, 그게 마지막 기억이다. 대부분이 태어난 자리에서 살다가 태어난 자리에서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주목받는 것이다. 내가 받은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별수 없다. 인형극을 하면서 늘 배우고 있었다. 코끼리 옷을 입으면 코끼리고 시녀2는 끝날때까지 시녀2였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 한 가지는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우리가 서로 보통의 친구가 되려고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텐데. 너무 잘지내려고 대단한 우정을 욕망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거리감은 관계의 생명선 같은 거였다. 지구와 달처럼. 우정에는 낌새가 있지만 결별에는 그런 게 없다. 언제나 벼락처럼 쏟아져버린다. 예의없이. 혹독하게.”

 

부자에 관해서 냉소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는 리즈. 리즈는 또 말한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우리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해서라는 것을. 그래서 리즈는 이런 문장을 끌어다 쓴다. “우리는 나의 인생보다 타인의 인생을 더 많이 산다.” 술집에서 돈을 벌지만 그래도 자존심과 양심은 저버리지 않는 리즈.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오는 듯 했다. 그것은 날씨 연구소에 가끔 드나드는 대학강사 일명 감독. 그러나 그는 애 딸린 유부남. 리즈는 영화와 예술에 관한 조예가 깊었고 순수했기 때문에 감독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리즈는 감독에 관해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져 갔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감독은 그의 세상에 리즈를 들여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개발과 성공을 위해 리즈를 이용할 뿐이라는 것을. 리즈의 이별감정은 이렇게 표현된다. “더 이상 나를 나눠줄 생각이 없었다.” 리즈가 위험한 사랑에 발을 들여 놓을뻔 하다가 멈춘 것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가난하고 바쁜 인생을 사는 리즈에게 그 사랑은 하등 도움될 것 같지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날씨연구소(술집)에서 그럭저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날씨연구소가 해체되는 계기가 생기게 된다. 바로 단골 요키상의 죽음. 일하는 곳에서 사람이 죽자, 가게의 사장과 사모님이 이혼하고 가게명칭도 바꾼 새로운 술집이 들어선다. 그러나 그 술집도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폐점. 그래도 날씨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이 주요수입원이었는데 리즈는 일할 곳을 잃게 된다. 그래서 리즈는 또 다른 일할곳을 구해야 하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20대에게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 즐겨.” 역시 리즈에게도 사람들이 하는 말. “젊을 때 즐겨.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고, 돈 좀 생겨봐. 시간이 없지, 둘다 생기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요. 근데 있잖아. 사람까지 생겼을 때는 건강이 없단다. 나보다 더 인생 선배님들 말씀이야. 빚내서 즐기고, 나중에 갚아. 돈은 생겨도 젊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런데 가난하고 바쁜 리즈는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놀아보지 않은 사람이 잘 놀 수는 없으니까.

 

나는 리즈의 마지막 말이 궁금했다. 가난과는 너무 친하고 부와는 너무 멀어져 있는 리즈, 타인의 부유한 삶이 부러울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마냥 부러워하기엔 그녀에겐 게으름부릴 여유도 없다. 그녀는 이제 새로운 다짐을 한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멈추기로 했다.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낫다고도 덜하다고도 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 충실히 걸을 것이고 그러다 한 두번쯤 의도치 않게 겹치기도 할 것이다. 어쩌다보니 되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큰 거짓말이다. 나는 어짜피 한번 길을 잃어야 한다면 이쯤에서가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꼭 한번 넘어져야 한다면, 고대인들처럼 새 길을 뚫기 위해 당나귀를 미리 보낼 수도 없다면, 꼭 내가 찾아내야 하는 길이라면 지금쯤 넘어지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넘어지는 것을 면제받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그저 그것이 누적되어 점점 나아지기만을 바랄뿐이다. 적어도 조금 멋있게 넘어지거나, 덜 아픈 방법은 알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가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와 지위의 세습이 고착화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좌절하고 있다. 그 젊은이들의 생생한 현실과 그들의 고뇌가 이 소설의 리즈를 통해 표현되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 소설은 그녀가 당당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된 소설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힘들게 삶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리즈는 일찍부터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아 쓰디쓴 경험으로 다져진 강한 여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직은 넘어져도 괜찮은 20대 리즈. 그녀에겐 경험을 쌓고 현명한 판단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디로 가야 할지 불안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청춘이어도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 옆에 서 있다. 그녀는 부유해서 여유롭게 사는 다른 또래를 부러워하기보다, 빈곤을 낳을 수 밖에 없는 사회를 원망하기보다 넘어질지라도 자신의 길을 스스로 담담하게 개척해나가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한국사회 모든 청춘들이 불안하지만 불행하지는 않기를. 씩씩하게 미래를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리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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