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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 1

[도서] 레 망다랭 1

시몬 드 보부아르 저/이송이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격 중단, 독일군의 패주, 나는 떠날 수 있을 거야."(p7)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의 크리스마스 밤. 검은 수정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앙리는 1,000대의 비행기들이 룬트슈테트(실존인물, 유명 독일장교)의 후방을 공격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물러가며 독일의 패배로써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되돌아올 날이 머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성탄절의 밤을 충만하게 만들어요. 가난하고 빈약해진 파리의 골목마다 축제가, 오락과 쾌락이, 여행과 행복, 무엇보다 자유가 새로이 시작되겠지요? 하마터면 독일군의 총부리 앞에 허망하게 사망할 뻔했던 앙리가 피치 못하게 동거 중인 오래된 연인 폴과 헤어질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핑계로 독립을 하고 떨어져있는 나날이 익숙해지면 틀림없이 폴도 마음을 접겠지요.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는 깨질 것 같은 보물을 대하듯 조심스러운 폴의 태도도, 한순간도 빠짐없이 쫓아오는 폴의 눈빛도, 열정을 강요받는 밤 시체 같이 느껴지는 육신의 고욕도 견뎌낼 수 밖에요. 어쨌든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다 잊고 파티를 즐겨볼 생각입니다.



"나눌 수 없는 불행에 대해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이에요. 죄의식, 그건 정말 가증스러운 기분이죠."(p140) 앙리가 운영 중인 좌파 신문사 레스푸아의 젊은 직원들이 집으로 몰려옵니다. 앙리의 사상적 스승이자 좌파단체의 지도자이며 존경 받는 지식인인 뒤브레우와 정신과 의사인 그의 아내 안, 매일밤 미군들 사이로 잠자리를 옮겨다니며 과격한 삶을 나고 있는 그들의 딸 나딘도 참여했어요. 미소가 넘치고 모두가 조금씩은 젊어진 듯한 기분에 웃고 떠들고 춤추고 감격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싹트는 희망은 동일하지만 이곳에 모인 젊고 나이든 지식인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요. 아직 종전 선언이 되지도 않았건만 누군가는 3차 대전을 예언하며 미국을 옹호합니다. 또 누군가는 계급없는 사회를 지지하며 소련이 지상낙원은 만들지 못할지라도 사회의 가장 올바른 체제를 이룩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누군가는 떠나간 사람들을 그립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잔인한 방식으로 너무나 매몰차게 지상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요. 타버린 대지와 시체 무더기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맹세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살아야 하니까, 지금이 행복해서, 죽은 이를 애써 잊으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말"(p11)전쟁이 끝나는대로 파리를 떠나 세상을 유랑하며 글을 쓰겠다 다짐했던 앙리의 꿈은 좌초됩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좌우파의 독자 모두를 끌어들이고 있는 레스푸아는 양 진영의 훌륭한 먹잇감이니까요.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를 정치에 몸담게 하려는 뒤브레우의 각오 또한 만만치 않아 그에게 진실한 우정을 느끼는 앙리로써는 기대를 배신하기가 힘이 듭니다. 사랑따윈 한톨도 남지 않았건만 바람까지 용서하며 몸과 마음을 다바치려 하는 폴의 집착 또한 좀체 수그러들지 않구요. 와중에 조카 같은 나딘과 잠자리까지 하게 되며 앙리는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전쟁만 끝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만 알았건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무엇일 수는 없는가 봐요. 한편 뒤브레우와 아내 안 또한 복잡다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첫사랑을 죽음에 빼앗기고 실의에 빠진 딸 나딘과의 갈등, 전쟁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환자들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 문학의 길에서 벗어나는 남편에 대한 걱정, 헛된 고민으로 늙어갈 날만 남은 오늘에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째서 살아야만 하는지 안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어떤 의미에서 문학은 삶보다 더 진실해."(p553) 성탄절의 밤으로부터 하루하루 멀어져 가며 맞부딪히는 해방 이후의 현실들은 일제로부터 독립했던 우리나 독일로부터 벗어난 파리의 그들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만리 타국의 역사가 도무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서 이 책이 더욱 술술 읽혔는지도 모르겠어요. 각자의 삶을 진정으로 의미있게 살아가게 만드는 계기라 되리라 믿은 전쟁의 끝은 오직 독일뿐이었던 적을 더 많은 정치진영, 무수한 이념들로 잘게 쪼개놓습니다. 레지스탕스 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가 서로를 향해 삿대질 하며 기사를 쏟아내는 모습이란. 현실과 비교하면 좋고 싫음도 생과 사도 희망과 좌절까지도 명확하고 단순한 문학이 차라리 진실해 보일 정도입니다. 앙리와 안의 시선을 오고가며 해방 후 파리를 해체하고 분석하고 묘사하며 독자를 이끄는 시몬 드 보부아르, 2권의 서평으로 남은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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