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영화에 처음 끌리게 된 계기는 출연진이었다. 그다지 TV와 친하지 않은 내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한가득이어서, 나도 알만큼 유명한 연기자들이 선택한 영화라면 실망은 하지 않겠구나 싶어 영화표를 예매했던 것이다.
그리고 옴니버스라고 하기에도, 장편 영화라고 하기에도 미묘한 영화에서는 출연진들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신하균을 한 대만 팰 수 있다면 기꺼이 유치장도 갈 수 있을만큼 짜증나는 연기를 잘 했으니까.
만약 내가 왜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가를 고민하는 남자가 있다면 페스티발을 보고 신하균이 하는대로만 안하면 그럭저럭 합격점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기 멋대로 되지 않으면 묘하게 기가 죽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나도 천상 여자구나 싶기도 했다.
카피라이터야 '야할수록 즐거워진다'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에서 만든 영화가 야해봤자 얼마나 야하겠는가. 그리고 이 말은 함께 본 친구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한 말로 증명이 됐다.
- 놀라운 게 뭔지 알아? 이 영화 전체에서 씬이 한번밖에 안 나왔다는 거야.
영화는 '평범'이라는 말에 짓눌려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던 5명 + 1명의 정상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상하게 가슴에 와닿았던 에피소드가 국어 선생님의 빨란 네글리제였다.
중년의 국어 선생님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몰래 입는 빨간 네글리제. 그 누구도 보지 못하게, 들키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자유를 잠시나마 누린다. 그리고 한 밤중에 빨간 스카프를 들고 네글리제를 입은 채 달밤의 산책로를 혼자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도 천진해서 그저 아이가 장난을 치는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 간의 합의 하에 하는 일이 왜 금기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영화의 주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심혜진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SM 옷을 입고 당당히 거리고 나가 햇볕 아래 선다. 이게 정말 죽을 죄라면 같이 지옥에 가자며.
영화초반에 '건전하고 살기좋은 도시'라는 슬로건을 설명하면서 '건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건전한 거~' 라고 능청스레 설명하며 뭉뚱그리는데 아마도 개인이 아닌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튀지 않게끔, 누군가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혐오하도록.
그렇게 사는거 말이다. 하지만 혐오하기보다는, 그냥 그들도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는게 낫지 않을까? 절대다수의 위치에 있는 대중으로 묶인 우리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