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써커 펀치를 보고왔기에 이제 웬만한 영화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뿔사, 내 불찰이었다. 음악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영상이라는 평이 있지만, 그런 걸 보려고 했다면 그냥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게 낫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두시간동안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는 스토리에 대한 몰입이 없었다. 또한, 중구난방으로 펼쳐두었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결말을 관객에게 던져 주지 못했다. 심지어 오픈 엔딩으로 끝을 맺을 경우에도, 그 오픈 엔딩까지의 이야기는 하나로 달려왔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도 부족한 배경지식과 설정, 개연성 없는 스토리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관객을 의아함의 분노로 던져 넣을 뿐이다.
그냥 머리색도 눈썹색도, 속눈썹색도 백금발인 아이의 액션을 찍고 싶었구나 싶은 영화였다. 그런데, 그래서 한나가 그렇게 예쁘냐고 하면 또 미묘한 것이, 계속 도망다니는 와중이라 패션이랄 것이 없어서 눈이 즐겁지가 않다. 아니, 한나의 옷은 그냥 노숙자 패션에서도 퇴보한 70년대 촌스런 삘이 난다. 리얼리티를 매우 살려가며 액션씬도 투박하게, 옷도 투박하게, 하지만, 음악만은 매우 화려하다.
한나의 대칭 축에 있는 악당 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경우, 비현실적일 정도로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하면서 리얼리티가 다 뭉개져 있어 영화의 개연성을 날려 먹고 있다. 뮤직비디오가 멋진 이유는 3~5분 동안의 영상에 모든 스토리를 압축해 넣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만 추려내기 때문이다. 영화 예고편이 재밌어 보이는 이유도 그렇고. 하지만 그걸 두시간으로 늘였을 때의 관객의 괴로움은 모두 다 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