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땅에 어두운 그림자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미소군정이 들어서면서 나라의 독립은 쉽게 인정되지 않았다. 또한 일제 치하, 독립을 위한 저항의 정신으로 무장하게 했던 사회주의는 미군정의 적이었고 제거 대상이었다. 미소의 냉전은 한반도 남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미군정에 의해 일제 치하를 재생시켰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미군정은 일제 협력자를 모아 행정을 유지하였으며 민중은 다시 한 번 사지로 내몰렸다. 미소의 이익을 위해 이 땅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이들은 공산주의자, 빨갱이로 몰려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서 민중은 주저 하지 않고 저항하였다. 어렵게 되찾은 나라의 광복을 빛나도록 만들고 싶었다. 미군정과 정치 권력을 앞세운 세력은 손을 잡고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4.3 제주 항쟁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5.10 남한 단독 선거가 이뤄지고 남한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동안에 제주는 그렇게 고립되고 잊혀지도록 만들었다.
문장 몇 줄로 요약되던 제주의 역사는 시간이 흘러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에 조금씩 잊혀 갔다. 잊기를 강요받았을지 모르겠다. 이승만 정권에서 군사 독재로 이어지는 동안, 일제와 다름 없는 시기를 보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주 현무암 아래로 스며들어 흘러 흐르다가 사람들의 목숨을 적시러 용솟음 치는 용천수 마냥 결국 제주의 바람은 저항과 올곧음으로 바로 세워졌다. #현기영 장편소설 3권에는 일제 치하의 제주에서부터 4.3 제주 항쟁의 겨울을 2023년으로 가져왔다. 사계절 내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제주 민중의 토속적인 삶을 그들의 언어와 노래, 애환으로 그려내고 나라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들끓는 마음을 토해내고 있다. 1300여 쪽에 이르는 이야기 안에는 제주 유명 관광지 이름으로 덮여져 때로는 무심했던 역사가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져 있다. #제주도우다 속 인물과 대사가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로 대신 그려진 듯 하다. 격렬하고 강하게 저항하며 투쟁했지만 쓰여진 글 사이로 흐르는 것은 그저 삶을 살아내는 민중의 힘이 느껴진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제주도우다 안에 녹아져 있기에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많이 이들이 함께 하길 추천한다.
■ 노인은 우리한테 말하기를, 그 사건을 당하고 나서 자신의 삶은 거기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고 했다. 사건 이후의 삶에서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고, 모든 게 헛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1권 10-11p)
■ 척박한 섬 고장인지라 부자는 드물고 가난이 평등한 공동체였다. (1권 44p)
■ 그때 그는 "대낮의 암흑"이라고 하면서 말했다. "창세야, 느도 날보고 대낮에 술 취핸 자빠졌댄 숭보겠지? 지금이 대낮이라고? 아니다, 지금은 깜깜한 밤중인거라. 날 주정뱅이엔 욕하지 마라. 이 험한 세상, 술 안 먹고 어떵 백여낼 수 있느냔 말이다!" (1권 85p)
■ 보리를 거둬들이긴 했지만 그해도 가혹한 공출로 인해 '쌀 키운 사람 쌀 없는' 농사가 되어버렸다. (1권 202p)
■ 그렇게 속성으로 정체성 탈바꿈의 의식을 치른 뒤 곧바로 태극기 제작에 들어섰다. (1권 236p)
■ "우린 삼팔선이 그어진 중도 몰랐수다. 전쟁 중에 정신없이 살아서 ……… 시노모세키 항구에서 출국 심사하는 맥아더 사령부 미군이 우리한테 물읍디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고. 허참! '북조선', '남조선'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말 아니우꽈. 그래서 물어십주. 거 무슨 말이냐고,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 하니까 삼팔선이 그어졌다는 거라예. 허, 그거참!" "그래서 우린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해십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 하고." (1권 297p)
■ 그런데 9월이 되자 한반도 정세가 야릇하게 비틀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1권 348p)
■ 추석 무렵에 미군의 항복 접수 팀이 입도하고, 곧바로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1권 355p)
■ "쳇! 이 전쟁에서 당신들이 이겼나? 우리는 싸움에 졌지만, 당신들한테 진 게 아니라 미국한테 진 거야! 우리가 져서 당신네 땅을 미국에 인계하고 가는 거라고! 정신 못 차리는 것들!". (1권 367p)
■ 석달 연수를 받고 순경에 임용된 인원은 도내에서 약 이백명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친일파가 대부분인 상관들을 떠받들어 모셔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경위 이상 경찰 간부의 80퍼센트가 일경 경력이 있는 친일파라고 했다. (1권 473p)
□ 역사의 흐름을 쫓는 이야기이지만 푸른 제주를 풍경으로 살아온 도민의 삶이 그려졌고, 일제의 억압 때문에 봉건 체제 개선이 어려웠으며 오히려 그들의 지배 도구로 활용되었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민중은 억압에 수그린 듯 밀어내고, 모순을 깨우치고 몸으로 부딪혀갔다. 외부 세력의 억압이 지나고 또다른 외압이 쏟아지고 내부 척결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역사는 어그러졌다.
■ "묵은 풀은 불에 타 재가 되고, 그 재를 먹고 새 풀이 자란다. 그것이 혁명이다!" (2권 16p)
■ 가뭄은 흉작을 낳았고, 흉작은 굶주림을 만들고, 굶주림 속에서 역병이 들이닥쳤다. 마치 불이 마른 검불을 만난 것처럼 감염은 무더위 속에서 빠른 속도로 번졌다. 기근과 역병, 두개의 재앙이 동시에 온 섬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2권 89p)
■ 장례를 치르지 못한 주검들은 관도 상여도 없이, 굴건제복도, 문상객도 없고 돼지도 잡지 않고 술도, 팥죽도 돌리지 않는 가운데 …… 천륜도 인륜도 끊긴 허무한 죽음이었다. (2권 92p)
■ 극심한 불행과 좌절의 연속인 지난 일년이었다. 대흉년의 굶주림과 호열자에 짓눈린 죽음의 시간이었고, 강제 공출, 복시환 사건, 친일파, 단독정부 등등 미군정이 자행한 총체적 모순이 만들어 놓은 절망의 시간이었다. (2권 173p)
■ 보리 공출을 반대하는 삐라와 벽보 투쟁은 두달 가까이 도내 여러 마을에서 벌어졌는데, 그 때문에 수십명의 청년, 학생이 검거되어 고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2권 244p)
■ 그들은 '빨갱이'란 말을 남발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단어였다. "빨갱이? 빨갱이가 뭐꼬?" 그러나 그들은 좌우 가릴 것 없이 좀 똑똑해 보이는 청년은 무조건 남로당이고 빨갱이라고 했다. (2권 269p)
■ "당신두 빨갱이야! 일본 데국 시대에도 지식분자들은 다 빨갱이었디. 내레 고문 전문가야. 일제 때부터 오년간이나 수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야. 내레 당신이 무시기 생각하는디 다 알아. 당신 대가리 속에 발쎄 들어갔다 나왔어." (2권 285p)
□ 이념 대립에서 이겨야 산다고 믿는 권력에 미친자들은 역사도 민족도 사람도 의미 없었다. 상대의 제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고 정의로 인정했다. 사람, 관계, 역사의식의 부재가 낳은 망상과 광기는 제주를 비롯해 한반도를 휩쓸었다.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다. 역사의식의 부재는 오로지 현재 보이는 이익과 권력을 쫓아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오로지 정의라 믿고 아둔한 구렁텅이로 빠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마주한 오늘날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 9연대 연대장 김익렬 대령이 고민 끝에 미군정에 화평 정책을 제안했다. ....중략.... 이른바 4·28평화회담이었다. 그 회담에서 쌍방은 서북청년단을 해산할 것과 장차 제주의 치안 상황은 경찰이 아니고 군이 책임질 것을 합의했다. 합의 내용이 알려지자 산부대는 이제는 총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며 환성을 질렀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회담은 한갓 어릿광대짓에 불과했음이 곧 밝혀졌다. 미군정 중앙이 갑자기 표변하여 회담 결과를 뒤집어버렸던 것이다. (3권 29p)
■ 제주도민의 총선 보이콧에 크게 분노한 미군정은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발동했다. (3권 44p)
■ 그 사람들이 뭐 사상이 있거나 특별히 애국심이 많아서가 아니고 그냥 매 안 맞으려고 입산한 거라. 입산자 가족들까지 고문에 시달렸주. 젊은 여자에겐 남편 내놔라. 마흔 넘은 여자에겐 아들 내놔라 하멍 막 두들겨 팬 거라. . (3권 57p)
■ 군경 토벌대의 무자비한 파괴 공작은 그때까지 한 몸 같았던 도민 공동체를 두쪽으로 찢어놓았다. (3권 69p)
■ 방화와 살인에 도취된 자들이 환각 속에서 계속 불을 지른다. 고함치고 총을 난사한다. 겨우 불을 피해 벗어난 사람들을 향해 총알이 사정없이 날아간다. (3권 133p)
■ "이건 전쟁도 전투도 뭣도 아닙니다. 그냥 살인 아닙니까?" "야, 소위! 말이 많다. 정신 차려라, 이 새끼야! 위에서 내려온 작전명령이 살아 있는 건 다 죽이라는 것 아닌가? 우린 살인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알았나? (3권 138p)
■ 얼마 후 대흘리, 와산리, 선흘리, 교래리에서도 불길이 솟았다. ..중략..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태우고, 모조리 빼앗아라! 이른바 삼광 작전이었다. (3권 142p)
■잔혹함이 군인 정신으로 여겨지고, 명령과 지시 이상으로 잔혹해야 용감하다고 평가되고, 빨리 진급할 수 있었다. (3권 193p)
□ 광기 어린 학살 현장은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 어딘가에서는 아직 진행중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제주 4·3 항쟁을 비롯한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지만 이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미래일 수 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제본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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