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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여자들

[eBook]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저/황가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서평] 보이지 않는 여자들


1.


“일하지 않는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을 하고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여자가 존재할 뿐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아이슬란드를 ‘일하는 여자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한데 대해 저자가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을 문제 삼으며 일갈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도, 그래도 여기까지는 잠재적으로 동의하던 내용이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세계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지워지고 있는지, 또한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며, 궁극적으로 사회에 어떤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여성 존중’이 사람으로 갖추어야 할 도리를 넘어서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안전판’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2.


여성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남성들보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향이 높다. 남성 또한 국적에 상관없이 직접 운전하는 경향이 높고, 자가용을 소유한 가구에서는 남성이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한다. 스웨덴에서는 외상환자 대부분이 보행자이며, 보행자가 미끄럽거나 얼어붙은 도로에서 다칠 확률이 운전자의 3배가 되고, 보행자 대부분은 여성이다.


겉보기엔 남성화장실과 여성화장실 넓이가 똑같은 것이 공정해보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설계해왔다. 그러나 남성화장실에는 소변기가 있어 같은 넓이라 해도 동시에 용변을 볼 수 있는 인원수는 남성화장실이 훨씬 많다. 게다가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2.3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단순히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조금 더 기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성들이 소변을 참거나 물을 덜 마시게 되는데, 소변을 너무 참으면 방광염이나 요로감염에 걸리고, 물을 적게 마시면 탈수증과 만성변비로 고생한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무급노동의 75%를 감당한다. 여성의 하루 무급노동시간이 3-6시간인데 반해 남성은 0.5-2시간이다. 세계에서 남성 무급노동시간이 가장 긴 덴마크나 여성 무급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노르웨이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무급노동시간이 더 길다. 예전에 비해 남성 무급노동시간이 길어지기는 한다. 그러나 무급노동시간 중에서도 남성은 주로 아이를 돌보거나 데려다 주는 일인데 반해 여성은 빨래, 청소, 설거지 같은 더 힘들고 귀찮은 일을 한다. 영국에서는 무급으로 치매노인을 돌보는 사람의 70%가 여성이다. 또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여성은 같은 경우의 남성보다 주위의 도움을 못 받는 경향이 있어서 소외감이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고, 이는 치매로 이어지기 쉽다. 핀란드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심장마비를 겪은 여성 가운에 돌봄노동이 없는 비혼여성은 기혼여성보다 회복률이 높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은 공공서비스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어린이센터 예산 1,260억 원을 삭감하고, 어린이센터 285개를 합병하거나 폐쇄하고, 사회복지예산 7조7천억 원을 삭감하였으며, 소득이 낮은 가정에 지급하는 간병인 수당의 인상률은 최저임금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모든 돌봄노동의 책임은 대개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이 결과 여성의 실업률이 20% 증가하고, 불완전취업 비율이 74% 증가하고, 본업을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바꾸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7배나 높게 되었다.


뉴욕필하모닉에는 1970년대에 여성 연주자의 비율이 0%에서 10%로 급격하게 높아졌다. 1980년 초에 이르자 여성 연주자가 신규 고용자의 50%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뉴욕필하모닉의 여성 연주자는 45%를 넘나든다. 이렇게 차이가 발생한 것은 오디션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바꿨기 때문이었다. 백인남성에 편향된 능력주의 신화가 깨어진 경우이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는 임신으로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게 힘들어 회사에 건물 바로 앞에 임산부용 주차장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성이었으면서도 직접 임신해서 부은 발로 걸어보기 전까지는 임산부용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사무실 표준온도를 결정하는 공식은 1960년대에 40세 70kg 남성의 기초대사율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무직 젊은 여성의 신진대사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에 따르면 사무실 표준온도가 여성에게 적정한 온도에 비해 5도가 낮다. 그래서 한여름 뉴욕에서 남성사무원은 여름옷을 입고 있는데, 여성은 두꺼운 옷을 입고도 춥게 느낀다. 이것은 그저 불공평한 일로 그치지 않는다. 노동환경이 불편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업무 성과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때로는 만성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스피린은 남성의 첫 심장마비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이지만 2015년 논문에 따르면 대다수의 여성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해롭다. 여성의 심장마비는 증상 뿐 아니라 기제 또한 남성과 달라서 지금까지 개발된 진단기술이 여성의 심장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심장마비는 혈관조영술로 동맥의 어디가 막혔는지 진단했다. 그런데 여성은 동맥이 막힌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아 혈관조영술로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가 무시되어 진단을 받고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맞는다. 남성편향적 치료법도 문제다. 대동맥 팽창 정도가 같더라도 대동맥이 파열될 가능성은 여성이 더 높고, 파열될 경우 사망률이 65%나 된다. 그런데 네덜란드 임상 지침에서는 수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남녀에 따라 다르지 않다.


3.


교회 수련원 운영을 맡고 있을 때 일이다. 폐교를 개조한 것이라 불편한 점이 많아 리모델링이라고 할 만큼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여성화장실의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여서 여학생 전용화장실을 한 동 더 만들었다. 샤워장도 신경 써서 꾸며놨는데, 막상 사용해본 여학생들이 샤워장에 칸막이가 없어 불편하다고 했다.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남학생들은 함께 샤워하면서 친해지지만 여학생들은 친해져야 함께 샤워를 한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경우가 그랬듯이, 여성 자신도 자기가 직접 겪어보기 전엔 무엇인 문제인지 알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니 남성이 그런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물론 당연하기 때문에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 전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이 지워지는 건 일상에서, 직장에서, 공공생활에서, 의료에서, 재난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대개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래도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로 인해 여성이 불편을 겪는 정도가 아니라 능률이 떨어지고,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부담과 비용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여성이 어떻게 지워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독자로서 인용한 수많은 통계와 자료가 사실인지, 그것이 지금까지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지 확인하며 읽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혹시 세세한 부분에서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저술 의도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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