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필경사 바틀비

[도서] 필경사 바틀비

너새니얼 호손,에드거 앨런 포우,허먼 멜빌,마크 트웨인,헨리 제임스,샬롯 퍼킨스 길먼 등저/한기욱 편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창비세계문학 - 미국' 편에 수록된 단편 소설은 모두 국내에 이미 번역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원문으로든 번역으로든 읽어 본 경험이 있는 소설은 고작 6편이더군요. 「젊은 굿맨 브라운」, 「검은 고양이」, 「필경사 바틀비」, 「에밀리에게 장미를」,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진품」 이렇게요. 이 소설들도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 이 소설들을 읽은 게 맞나 싶을만큼 새로운(?) 느낌이라, 괜시리 부끄러웠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11편의 단편 소설에서 「누런 벽지」, 「그랜디썬의 위장」, 「소형 보트」, 「달걀」, 「겨울 꿈」은 이번에 처음으로 접한 소설들입니다. 장편에 비해 단편 읽기가 가진 장점이 비교적 쉽게 작품 전체를 다시 읽기(read again)가 가능하다는 것이라서, 침대 곁 머리맡에 두고서 기회 될 때마다 한 편 씩 되새겨 볼 작정입니다. 특히, 「그랜디썬의 위장」은 얼마 전에 읽어 본 필립 로쓰의 『휴먼 스테인』의 주인공 콜먼의 비밀(?)과 비슷한 설정이어서 더욱 흥미가 생겼습니다. 위장(passing)에 얽힌 역사-사회적 배경에도 관심이 생겨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살펴볼 생각입니다.

 

이 리뷰 아닌 리뷰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필경사 바틀비」의 표현 하나를 붙들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의 갈래를 내려놓는 것으로 만족할까 합니다. 어떤 표현인지는 소설을 읽어본 분들이라면 다들 짐작하시겠죠. 네, 바로 이 표현입니다.

 

I woule prefer not to.

 

역자인 한기욱은 해설에서 문장 하나를 옮기는 데에만도 몇 년 동안 고심했다고 밝히더군요. 그 고심이 헛되지 않게 이 책은 수려하게 읽힙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두고 보태는 얘기가 번역의 1차적인 옮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전혀 아니란 걸, 미리 밝혀도 좋겠네요. 저는 소설을 읽고 길게 여운이 남는 부분을 번역에 대한 고찰을 발판삼아 더 밀고 나가보려는 것 뿐이랍니다.

 

관련 논의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아서 저는 바틀비의 이 문장을 두고 어떤 해석들이 그간 오갔는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대충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에서, 최근에는 지젝이 『시차적 관점』에서 이른바 '바틀비의 정치학'을 두고 논의한 것 정도가 전부인데, 그것도 제가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꽤나 어려웠습니다.

 

저는, 일단, 'I would prefer not to'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지젝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차적 관점』에는 이 표현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다소 직역에 가깝게 옮겨져 있습니다. 그저 제 느낌(?)으로는, 이 번역이 직역투의 투박함 말고도 놓치는 게 있는 거 같은데, 그게 뭐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어쨌든 이 표현은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가 아니라는 얘기이지요. 이것이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1단계, 준비 단계로서의 부정, 저항, 또는 항의로 자리매김된다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꽤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수동적(?) 부정에 대한 상대의 반응 - 가령, 'Ah, then, what might you prefer?'같은 질문 - 에 대한 적절한 응대까지 예비하고 있으니까요. I prefer to .. 라고 말하면 되겠죠.

 

하지만, 이 표현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작업에서 극복해야 할 출발점이 아니라, 지젝의  견해처럼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형성하는 기준과 근거로 삼을 경우에는 prefer에 담긴 적극성과 능동성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한보희가 이 표현을 '저는 안 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옮겨 놓은 것을 보았는데, 이 경우에는 이렇게 옮기는 게 좀더 적절한 듯도 싶네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요? 그야 당연히 모릅니다. 그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세웠다 부쉈다 지었다 지웠다 하는 게, 아니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이 소설의 힘일 테지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이 소설의 가능성의 중심을 열어 뭔가 그럴듯한 번역을 얻을 지도 모르고요. 어설퍼서 꺼내놓자마자 부끄러워지지만 '그렇게 안 했으면 싶습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게 더 좋습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게 낫겠습니다' 등등.. 그만 할게요.

 

소설 하나하나가 남겨놓은 감상을 잘 묵혀 리뷰를 적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시간들을 품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은 소설이고, 그 소설들이 모여 있는 이런 선집은 새로운 상상력의 인큐베이터가 될 것입니다. 그런 기회를 준 이 책에 지금은 우선, 고맙다는 말을 먼저 남기고

 

 

 

곧 돌아오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겠죠?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