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페르잔 백작을 기억하는가? 밤잠도 아껴가며 읽었던 불멸의 순정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그가 나온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애인이었던 그는 스웨덴의 백작이다. 책도 그렇지만 만화를 읽을 때 역시 줄거리의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깊이있게 읽어낼 줄 알아야 여러모로 남는 게 있다.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 혁명 전후를 그리는 걸로 대충 알고 대신 각 캐릭터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탐하며 이쁜 편지지를 비롯하여 종이란 종이에 따라 그리기 열풍이 불던 시기였기에 그 외 다른 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앙투아네트와 페르잔의 모습을 그럴싸하게 그리면 그걸로 만족! 한편으론 의심을 갖기는 했다. 프랑스에 난데없이 웬 스웨덴 사람이야. 어디서 나타났지? 하는 그런 짧은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만 그치고 다시 비현실적 이미지 그리기에 바빴다. 이쯤되면 조금 궁금해질거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베르디 오페라 [가면 무대회]는 그 배경이 스웨덴의 왕가이며 당시 왕의 이름은 구스타프 3세( 재임기간 1771~1792)다. 그의 곁에는 충실한 신하가 함께 했으니 그가 바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인인 한스 악셀 폰 페르잔 백작(1755~1810)이다. 그는 앙투아네트가 왕비가 되기 전 황태자비 시절 프랑스의 가면무도회에서 만나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다. 프랑스와 우호적 관계를 바라던 구스타프 3세 국익을 위한 일로 이를 반겼다.
오페라는 1792년 구스타프 3세 오페라 극장 암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극적 연출을 시도했다. 구스타프 3세는 스웨덴의 귀족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농민과 부르즈아의 편을 들며 왕당파의 지지에 힘입어 무혈혁명으로 시민계급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왕의 자리를 지켰다. 오페라와 무도회를 즐기던 국왕은 젊은 여인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다가 자신의 비서인 앙카르스토롬백작의 부인인 아멜리아에게 연정을 갖게 된다. 암살사건의 인물로 지목된 바 있는 앙카르스토롬백작이 실제 국왕을 죽였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국왕은 왕비와의 불화가 잦았다고 하는데 동성애적인 성향도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오페라에 오스칼이라는 왕의 시종이 나오는데 여자처럼 예쁘다. 마치 [베르사이유의 장미]속 금발의 오스칼처럼 말이다. 이 오스칼 역은 소프라노가 맡는데 본 음반에서는 조 수미가 연주한다. 강렬한 음색보다는 술속 요정의 소리처럼 가녀리고 아름다운 조 수미가 이 역에 제격이지는 않다. 그녀의 기량은 최고이지만 ... 그녀의 무대는 로시니와 도니제티의 오페라에서 빛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베르디는 그녀에게 무거운 느낌이라고 할까.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북구의 베니스라 불리울 만하다. 수상도시이면서도 앤틱한 도시 분위기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롭게 정리되어 있어서 눈에 보이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왕립극장앞 구스타프 3세의 동상은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한몸에 받은 국왕답게 건재한 모습으로 서 있다. 스웨덴이 낳은 건출한 테너 유시 비욜링의 연주로도 이 오페라를 추천한다. 음악성과 목소리의 기교를 탁월하게 펼치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화려한 아리아도 들을 만하다. 베르디 오페라 중 그닥 마음에 닿지는 않았지만 왕가의 치정극이 베르디를 통해 예술로 승화되는 그 지점을 놓치지 않고 듣는다면 음악적 소양에 보탬이 될 듯하다. 물론 이 오페라와 괸련된 역사적 배경까지 안다면 좋겠다.
Un ballo in maschera. Giuseppe Verdi
Wiener Staatsoper - 1986
Addio, addio. E tu ricevi il mio!
Ella e pura. Fine dell' opera.
Luciano Pavarotti (Gustavo)
Piero Cappuccilli (Renato)
Gabriele Lechner (Amelia)
Ludmila Schemtschuk (Ulrica)
Magda Nador (Oscar)
Georg Tichy (Cristiano)
Franco de Grandis (Conte Horn)
Goran Simic (Conte Warting)
Alexander Maly (un giudice)
Franz Kasemann (un servo d'Amelia)
Wiener Sangerknaben
Chor der Wiener Staatsoper. dir. Walter Hagen Groll
Orchester der Wiener Staatsoper.
Cond. Claudio Abbado
위 영상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파바로티, 카푸칠리, 그리고 아바도가 무대인사를 합니다.
오페라 무대는 이 모든 것이 끝나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영상으로도 설레이는 장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