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살고 있는 당신에게 삶의 한 모퉁이에서 발목이 잡혀 정체된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눈물나는 일이 웃음짓는 일만큼이나 드문 세상 아닌가요? 내 손안에 인터넷이 들어와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세상과 연결되는 그 순간을 기적이라 부르고 싶어요. 차가운 문명의 성과를 당연히 즐기며 정말로 별일 없이 살아가는 당신에게 눈물과 웃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당신을 눈물나게 하고 웃음짓게 한 최초의 기억을 기억하나요? 혹시 정말로 별일 없이 살다보니 그런 기억은 안중에도 없었던 건가요?
끌림, 설렘, 고백, 아픔, 이별, 상실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 안에 눈물과 웃음을 넣어볼까요? 당신한테 끌린 한 사람이 설레입니다. 고백을 해요. 두려움없이... 한 번 해 보는 겁니다. 해서... 아님 말고요. 그런 기억이 한번도 없었다면 정말 별일 없이 산 겁니다. 냉혹한 현실에서 믈질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손해보는 일 없이 살고 있어서 만족스럽다면 그도 잘하고 있는 거죠. 내 일상이 무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간섭과 방해를 받기 시작하면 이유없이 불편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차오르려는 감성은 누르는게 상책이죠. 차갑고 합리적인 이성이 살아있을 때 당신은 별일 없어져요. 그게 편하고 좋아요.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제법 쿨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런 점이 당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재탄생하기도 하죠.
밖은 온통 노랗습니다. 가을바람과 뜨거운 햇살이 만들어놓은 결과를 보고 있노라면 어디론가 떠나야만 힐 것 같아요. 여행을 계획해봐요. 당신 정도의 연륜이라면 애써 일궈놓은 일상에 큰 지장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건 무슨 조화일까요. 일꾼에게 관성의 법칙은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그럼 일만 하지 책은 뭐하러 보나요? 음악은 왜 듣죠? 친구랑 영화관은 왜 가는데요? 때때로 남들이 본 공연에 부러운 기분은 왜 섞나요? 아쉬움이 남아서 그래요. 할 수 있는데 못했던 아쉬움때문에요. 당신을 좌지우지하는 건 관성이랍니다. 안하면 안될 것 같은 그 안절부절함에 관성은 해결책을 던져줍니다. 그저 하던대로 하면 안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밖으로 나가려는 당신의 목덜미를 끌어당겨요.
일상의 안전망을 뚫고 들어온 상영된 적 없는 가상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심금을 울립니다. 처음에 이 음악을 들었을 땐 드라이빙하면서 들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바람결에 몸을 맡기면 이런 기분일까요? 손가락 사이에 신선하고 순수한 감성 한 자락이 걸린 듯 그 상큼한 선율에 반했습니다. 곧이어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스토리를 보면서 짠하고 아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신이나 내가 사는 세상의 질서에 그들의 비밀이 들통나지 않기를 바랬어요. 물론 그 바램은 걱정에 불과했지만요. 들통이 날 만큼 그들에게 시간이란 게 있었나요. 죽음의 그림자가 먼저 찾아왔으니까요. 말도 안되는 부음문자에 그 남자는 운전대를 놓고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신호등의 일시정지등은 끊임없이 깜박거리고 회색빛 도시에 홀로 남겨진 그는 목놓아 웁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존재의 비애감도 느껴집니다. 일상은 다시 설렘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겠지요. 가슴이 시키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