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자꾸 들은 음악
베르디 : 운명의 힘 - 플라시도 도밍고, 미렐라 프레니

[CD] 베르디 : 운명의 힘 - 플라시도 도밍고, 미렐라 프레니

MutiㆍFreniㆍZajicㆍDomingoㆍSurianㆍZancanaroㆍPlishka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사계절의 날씨중 가장 싫었던 계절은 여름이었다. 빗소리는 좋은데 비가 남긴 습기는 싫었다. 푸른 하늘은 좋아했지만 한여름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도시의 아스팔트를 보며 폭염탓을 종일 해댔다. 되는 일 하나도 없던 시절에 위안거리를 찾아다녔다. 조조영화! 그 시절 탈출구는 친구도 책도 아니었다. 영화와 음악에 기대어 뜬구름위에 자리를 잡고 숨어지내는 일이 제일 좋았다. 
그 때만 해도 내가 사랑했던 유럽영화들은 후져도 너무 후진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지금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별천지가 아닌가. 문화원도 때때로 내 허영기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 변두리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별천지를 꿈꾸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시네마 천국은 바로 그 때였다.

마르셀 빠뇰의 원작을 영화화한 [쟝 드 쁠로레뜨]를  [마농의 샘]이란 제목으로 봤다. 후에 오리지널 감독판을 문화원에서 봤고 그 때 [쟝 드 쁠로레뜨]가 원작임을 알았다. 제라르 드 빠르뒤에와 다니엘 오떼유, 이브 몽땅과 엠마뉴엘 베아르, 이 네 명의 배우에게 금방 매료되었다. 프로방스라는 불리우는 남프랑스 시골동네의 한적함과 따사로움이 앞으로 닥칠 치정에 엮힌 비극적 결말과 무척이나 대조를 이루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그 곳의 풍광은 점점 더 나를 이끌었다. 습기를 말려버릴 것 같은 지중해성 기후와 부서지는 햇살이 황홀했다. 붉은색 흙, 보라빛 라벤더의 향기, 신화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거칠고 긴 금발의 엠마누엘 베아르, 무엇보다 그 건조한 기후. 한여름의 폭우와 폭염이 내 영혼을 데려가버린 그런 여름이 아니어서 부러웠다. 언젠가 저 풍경속으로 꼭 들어가리라 마음억었던 때였다. 

영화 전편에 흐르던 음악얘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유럽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바로 음악때문이기도 하다. 스웨덴 영화였던가.  [엘비라 마디간]을 보면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심지어 모짜르트의 이 곡을 엘비라 마디간이라고도 부르지 않은가. 대중문화 쟝르에 클래식 음악의 자연스러운 콜라보레이션이 영화와 음악을 바라보는 내 시점과 일치했다. 영화를 보며 설레였던 건 바로 이 지점이 일치했을 때이다. [마농의 샘]이 추억이 되고 기억속에 여전히 머무는 것도 줄거리못지 않은 음악덕분이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이 [마농의 샘]에 흐르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었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습관처럼 듣던 FM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녹음테이프를 만들고 주머니를 털어 음반을 산다. LP 영화음반을 사고 오페라 음악을 내 기억창고에 모아두곤 했다. 나는 내 젊은 시절을 이렇게 탕진하며 보냈다. 시간만 잡아먹는 소모적인 행위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생산과 효율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먹고 사는 일에 전전긍긍할 때에는 잠시 길을 벗어나기도 했다. 노동이 나를 노예로 만들고 일상이 전쟁이었을 때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향유해야 할 몫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Riccardo Muti "Overture" La Forza del Destino
by Giuseppe Verdi
Philadelphia Orchestra 
Frankfurt,  Alte Oper 1987

베르디 오페라의 대부분은 인간적 갈등을 주제로 비극과의 간극을 맞춘다. 그러나 오페라 [운명의 힘]은 인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운명'을 그린 작품으로 그 운명에 농락당하는 인간의 한계와 신에의 갈구로 결론지어지는 대서정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결국 신의 구원외에 길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오페라에서 음악이 갖는 의미에 비율을 두고보면 그런 줄거리 따위는 별 의미가 없다. 이 오페라의 힘은 바로 인간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이며 예술임을 증명한다는데 있다. 소장하고 있는 앨범은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렐라 프레니의 연주이다. 이 조합을 싫어할 수 있을까. 지배와 군림으로 무장한 듯한 카리스마를 휘두르는 무티와 음악성과 기량면에서 최고인 도밍고와 프레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누구를 좋아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푸치니의 [쟈니 스키키]에 나오는 아리아 <O. mio Babbino caro>를 미렐라 프레니의 연주로 들었다. 나는 이 아리아를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만들어진 목소리로 부르는 듯 들려서였다.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지만 프레니는 그 부분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고 단정하고 솔직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졌다. 그런 프레니를 사랑한다. 나도 노래를 한다면 프레니처럼 하고 싶다. 

이제는 여름이 좋다. 아니 여름이 줄곧 그립다. 뜨거운 햇살과 건조한 바람이 부는 여름의 풍광을 즐기는 싶다. [마농의 샘]에서 들려오는 그런 운명의 서곡을 들으며 분수의 도시에서 머리를 숙여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싶다.  솟아오르는 물을 마음껏 들이키고 싶다. 


Franco Corelli / Giangiancomo Guelfi
"Le minaccia, i fieri accenti"
La Forza del Destino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2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산과들

    클래식은 마음의 평안을 주는 것 같아 계속 들어도 지루하지가 않아 좋은 것 같아요. 리뷰 잘봤어요. 감사합니다.

    2013.10.28 11:2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듣다 보면 지루하기도 해요. 초기에는 일부러라도 마음을 줘야 들리더군요.

      2013.11.07 05:05
  • 파워블로그 하우애

    뮤지컬을 보며 사람의 목소리가 바로 악기 그 자체란 걸 느끼게 되더군요. 한 번 접해보면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던데 오페라도 접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2013.10.28 12:4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국내에도 해마다 클래식 공연 플랜이 나오더라구요. 시간 맞춰 골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3.11.07 05:06
  • karajan

    좋은 글 잘 읽고 추천 쾅! 하고 갑니다. 이미 감상하셨겠지만 시노폴리의 운명의 힘 음반( DG)도 꽤 좋더군요. 무티의 저 음반 표지를 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나네요. 저 음반 가격이 꽤 높아서 매장에서 들었다 놨다 반복했던 기억이.. 저는 무티의 모차르트 오페라 지휘 음반들이 마음에 들어 계속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2013.10.29 00: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지도같은 지휘자같아요. 그를 따라 가면 보물섬의 보물도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임스 레바인 좋아해요. 음악성과 감성이 좋아보여서요.

      2013.11.07 05:08

PYBLOGWE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