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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도서] 불한당들의 세계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르 저/황병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3월이라 봄햇살은 따뜻한데 내 심사는 우울했다. 20대 초반에 은연히 찾아온 찬란한 봄과 비교되는 비애감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다 써버린 지난 시간들에 대한 의식이라도 치뤄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위 눌려 이른 새벽에 홀연히 깨어 화장실 문을 열면 괜히 섬뜩하고 돌아와 내 자리에 누우면 양팔이 저려온다. 한낮에 찌푸듯하면 이리저리 구르면서 몸늘이기라도 할 수 있겠지만 잠깬 새벽에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한과 비애가 밀려온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종종 생겨서 조금 힘들었나보다. 게다가 밖은 눈부신데 내 시력은 그 눈부심때문에 피곤했다. 내게 이번 봄은 어려운 시간인게 틀림없다. 가만히 지켜 보다가 작별인사도 없이 냉큼 가버리기만 바랄 뿐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전집을 책장에 꽂아두고 읽을 시기만 기다렸는데 지금이 제때인 것 같아서 한권씩 펼쳐보고 있다. 세기말에 태어나 87년의 일생을 살다간 보르헤스는 유전적 시력결함으로 이미 10대에 어둠의 세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작품들과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문자로 답하였으니 그의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의 텍스트를 읽기 전 나는 보르헤스가 간암으로 죽기 한 달 전 그의 비서와 비로소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그가 현재했던 시대를 마감하고 자신이 앞으로 부재할 시대에 문자와 저작권으로 남을 그의 모든 저서와 마음을 죽기 전 한 사람에게 일임한 것이다.  끝사랑은 보르헤스처럼... 봄맞이 독서에 여자들 애처로운 인생 이야기와 결혼에 대한 정체성을 따지는 작품을 두세권 읽었더니 이런 저런 얄궃은 생각이 많이 든다. 


그의 전집중 제1권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아닌 그 외 소외 지역중심의 악랄한 인간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단칼의 문장으로 베어주는 텍스트이다. 기존해 있던 작품들에서 소재를 끌어와 사실은 허구로 허구는 사실로 재포장하였다. 다시 쓰기의 묘미를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다. 보르헤스 글읽기가 어렵다기보다는 미처 탐색하지 못했던 세계였기에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와 정서는 하나로 집결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니 이해와 공감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지 않겠는가. 게다가 여기에 등장하는 불한당들 중 아는 이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까지....그나마 다행인 건 책이 얇다는 점과 단편별로 소재가 나뉘어져서 간편하고 의외로 단순했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한 문장씩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올 봄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에 힘이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몰입의 기회를 만들지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누구에겐가 주어진 하루는 전날과 다른 새로운 날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날이고 내게 찾아온 기회의 날이다. 그걸 쓸데 없이 소비했기에 기회를 잃었고 그 댓가로 나는 힘이 빠졌다. 

며칠 전에 읽은 [퇴적공간]이라는 책에도 보르헤스의 가치를 설명하는 내용이 꽤 니왔다. 그로 인해 책읽기에 도움이 되었다. 아직 남은 전집 4권의 글들도 마저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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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이

    보르헤스가 책을 읽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하긴 합니다. ^^ 전 이 시리즈가 아닌 세계문학전집으로 시작했는데 목차들 살펴봐서 전집을 읽을 것인지 아니면 가장 유명한 픽션들과 알레프로 끝을 낼 지 고민을 좀 해보렵니다. ^^

    2014.03.19 09:2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전집에 도전해보겠어요. ^^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요.

      2014.03.21 04:51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온 몸에 힘이 다 빠지셨군요.
    오는 봄도 그저 남의 봄처럼 대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1주일전 1년 만에 퍼머를 했네요.
    1년전 숏퍼머를 했다가 맘에 안들었는데, 단발퍼머에 변화를 주니 생기발랄 분위기 변신되었고, 연보라면서 연분홍이 섞인 립스틱 매트한 걸로 바르니 새삼 외모에서는 약간 맘에 들어요. 마음은 우울보다는 가볍지만 멍하고, 몰입도 안되고...
    갱년기 증상은 지금은 못 느끼는데 상체에 골고루 살이 붙어서 운동하면서도 힘이 빠지네요. 오죽하면 쿨 쉐이핑(냉동지방분해)를 며칠 전...ㅠㅠ

    2014.03.19 21:0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에고....마음도 힘들었어요 뭐니뭐니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위로가 되요. 독서와 글쓰기, 음악듣기, 립스틱도 하나 사서 바를까요? ㅎㅎㅎ

      2014.03.21 04:53
  • 스타블로거 초보

    오늘은 어제의 오늘과 분명히 다른 날인데....
    그런데도 어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ㅎ

    2014.03.26 14:4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하루

      항상 오늘을 사는데 왜 어제와 비슷한지...ㅋㅋ

      2014.03.27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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