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도 없는 그녀와 결혼 전까지 살아 온 과정은 다를지라도 그 이후의 모습이 친근하여 가깝게 느껴졌다. 언니라 부르며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내를 편하게 얘기하고 싶어 ‘경주씨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다 지우길 반복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소설 속의 주인공이지만 나에겐 현실에 있는 경주였기에 웃기게도 나 혼자 살갑게 구는 것이 일방적인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었다. 경주가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상황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짐작만 했던 것이 정말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확인하게 되면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이를 등원시키는 분주한 아침의 풍경, 그에 앞서 어린이집 보내는 시기에 대한 고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 재취업에 대한 고민 등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나 역시 했던 것들이라 충분히 공감하였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과정도 비슷했다. 경주와 막역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절친들이 돌잔치에 말도 없이 참석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도 없었던 것을 보면서 나의 경우도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동창이지만 대학에 가고 더욱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결혼과 임신을 제일 먼저 알렸지만 뻔한 축하한다는 말 대신 특유의 시니컬한 반응으로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했었다. 원래 그런 친구니까 이해했지만 그 이후부터 연락이 없다가 결혼식에도 오지 않고 한참 뒤에야 못 가서 미안하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끝내 축하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그렇게 그 친구와 의절했다.
경주와 J의 관계에서 보여 지는 모습 또한 겪어본 적이 있어서 미혼인 친구들과 얘기 나누는 게 조심스럽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할 이야기가 없어져 연락이 줄었다. 뭐, 이래저래 씁쓸하다.
아이를 낳고 밤잠이 줄었다. 밤중 수유를 하느라,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는 나만의 시간을 갖느라 잠을 줄였다. 물론 몸은 피로하지만 고요한 그 시간을 끊질 못했다. 경주의 밤과 새벽도 그러했다. 남편 주원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지우의 엄마가 아니라 자신으로 사는 시간을 보냈다. 비록 잠을 잃어갔지만 엄마의 모든 감각이 아이에게 맞춰져 깊이 잠들 수 없는 시기가 있었기에 아이는 깜깜한 밤에도 환하게 잠들고, 나는 나만의 귀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경주는 재취업을 위해 보냈던 이력서의 회신을 확인하고 거절과 외면을 받는 동안 우주 속의 지구를 보며 자신의 좌표를 새롭게 인지한다. 지구의 귀퉁이, 작은 카페에 앉아 있는 자신에게 허락된 찰나의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야 구직활동을 계속 할 힘과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나 또한 결혼 전에는 힘든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한한 우주의 한낱 티끌 같은 나라는 존재를 상기하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를 스트레스로 몰아넣었던 모든 주범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면 힘들었던 일이나 사람, 상황도 조금은 묵직하게 넘겨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딱 결혼하고 나서는 내게 일어난 일이나 일어나지 않은 염려되는 일들 모두 커다란 존재가 되었고 세상의 전부이자 우주가 되었다. 좀체 대범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워졌다.
경주는 말한다. 아이를 낳은 뒤로 예전에 자연스럽던 일들이 조심스러워졌고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으며 자신으로 살면서 한 생명을 건사하는 엄마의 역할을 한다는 게 많은 걸 변화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고.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우리는 변했고 엄마의 역할과 나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경주에게 카페 제이니는 재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 공간이었다. 감각이 특별하고 옷맵시가 돋보이는 미스 제이니는 프로페셔널한 카페 사장으로서 경주로 하여금 처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인 듯하다. 미스 제이니의 취향으로 가득한 카페에서 구직 활동이나 장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경주에게는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닌 그냥 ‘나’로 있을 수 있었다. 알고 보면 미스 제이니에게도 카페는 그런 곳이었을 것 같다. 아이가 아파 카페 영업을 중단한 기간이 길어지고 결국엔 카페 문을 닫아야 했던 미스 제이니였으니까.
경주는 두 달동안 시간을 보냈던 카페 제이니를 둘러보며 생각한다. 여전히 미지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지만 여기서 보낸 한 시절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말이다. 경주가 카페에서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경주'라는 쉬이 잠 못 드는 동지를 만나 막막했던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혼인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면서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들이 나를 다른 세계로 떠밀었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그 세계는 나를 이루는 것이고 나를 확장시킬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더 성장하고 나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