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티비에서 방영하는 신비아파트의 영향인지 으스스한 책표지의 궁금한 아파트를 보고는 큰 아이가 잽싸게 가져가서 읽어달래요. 엄마, 아빠가 번갈아가며 매일 읽어주고 있어요.
탐정이 꿈인 ‘나여우’가 까다로운 고모네 집에서 지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에요. 아파트 사람들과 마주치면 인사하지 말라고 하는 고모의 말이 여우는 이해되지 않아요. 인사하면 다음에도 아는 척해야 하는 게 번거로운 일이래요.
저도 아파트 사람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는 하지만 어색해서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고모네 아파트 사람들을 보곤 저를 보는 것 같아 깜짝 놀랐어요. 아이에게는 아파트 사람들과 마주치면 인사 잘하라고 하면서 제 속마음은 되도록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아이, 뜨끔해라.
천둥번개가 치는 날, 22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귀신의 몰골을 한 할머니를 만나죠. 여우는 귀신이라고 믿고 귀신을 찾아다녀요. 하지만 곧 귀신이 아니라 23층 사는 사람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잔 22층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되죠. 그러곤 할머니와 함께 여우가 키우던 뱀이 집을 나갔다는 소동을 일으켜요. 한밤중에 노래하거나 음악을 틀면 뱀이 나타난다고요. 정말 기발한 생각이에요. 그렇게 해서 23층은 조용해졌고 바퀴벌레가 들락날락했던 집집마다 소독도 할 수 있게 되었죠. 어른들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여우의 귀여운 아이디어로 얼굴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일 없이 해결하는 모습이 기특해요.
여우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저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까다로운 고모의 모습이나 별것 아닌 일로 다투는 부모님, 귀신을 봤다는 말에 가서 공부나 하라며 어이없어하는 경비아저씨, 한밤중에 음악을 틀며 노래하는 23층 남자의 모습을 보면 어른이라고 해서 배려심이 깊고 지혜롭고 올바른 건 아니거든요. 여우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모습이나 일상이 새삼 다시 보였어요.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편지 속 내용처럼 ‘세상에는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그 안에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그림책인 것 같아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