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마이, 그것은 누구의 인생?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제목부터 심히 범상치 않다.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라는 활자가 아주 재빠르게 마음에 꽂혔다가 이내 활자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고양의 이미지로 시선이 옮겨간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치 해를 연상케 하는 주홍빛 원형 이미지들이 엄숙함과 신비로움을 더한다.
반수연 소설가의 평처럼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에서는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갖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듯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장애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에게 내려진 ADHD 진단, 용역 깡패의 고양이 로드킬, 병신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 수밖에 없었던 춘배 등 우리가 알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알지 못했던 또는 알고 있어도 특별히 인지하지 못했던 소재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첫 번째 단편 <비정상에 관하여>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장애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에게 내려진 ADHD는 그야말로 암 선고가 내려진 것과 다를 바가 없을 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와 그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그 기준은 사회에서 정한 일반적인 기준일 뿐, 사회가 달라지면 그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단편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에서부터 <방어 대가리>까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도 이와 같은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영화의 삼류 배우와 같은 자신의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을 쌈마이라고 표현했지만,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천천히 살펴보며 이내 곧 작가만의 독특한 위트와 애정이 담긴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빛내고 있는 쌈마이였다.
‘구겨진 종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지겨워질 무렵,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조언이랍시고 던지는 비난, 열심히 살아 보라는 다그침, 억지 열정 따위는 나 같은 사람의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인내심마저 좀먹는다. 더 이상은 행복을 정의하거나 흉내 내지 말자. 10년 뒤에 어떻게 되자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티끌 같은 것들을 찾아내고 작은 성취감을 맛보자.’
ADHD를 겪고 있는 대안학교 교사의 말을 빌려 김양미 작가가 우리에게 살포시 전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억지 열정 따위’도 소용없을 그 상황,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속 시원히 전하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그 시대의 특정 사회에서 정한 기준일 뿐, 같은 동시대를 살더라도 상황에 따라 누구나 ‘비정상’일 수 있고, 누구나 ‘쌈마이’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누구나 ‘정상’일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일류’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며 ‘억지 열정’도 통하지 않을 그 상황이 오면 자신을 인정해 주고, 자신을 보듬어 주고, 현재를 살아보자. 어떻게든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