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제빵회사나 제과점에서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은 빵'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마케팅을 벌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아, 우리 사회도 전근대적인 방부제를 쓰지 않는 선진 음식문화로 발전하는 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방부제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 경쟁력 있는 요소로 취급되지 않을 정도록 이땅에서 방부제가 설 땅이 좁아진 듯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점이 있다. 방부제를 쓰지 않는다늕 빵의 유통기한을 보면 대개 일주일은 족히 된다. 부드러울 정도로 촉촉하여 방균이 살기에 알맞은 습도를 갖추었고 설탕, 버터 등의 영양분이 충분한데도 상온에서 상당 기간을 버틴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
그러나 이상할게 하나도 없다. 빵을 만드는 사람은 방부제를 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원료인 밀가루에 이미 충분한 방부제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선박을 통해 수입되는 통밀이나 밀가루는 장기간 썩지 않으면서 하얗게 보이기 위해 방부제, 표백제 같은 화학첨가물의 '세례'를 받게 된다. 빵이 제과점에서 우리 가정으로 유통되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하지만 밀가루가 외국에서 제과점까지 유통되는 데는 최소한 몇개월, 길게는 몇년이 걸린다. 일주일 유통을 위해서는 방부제가 필요없지만 몇 년의 유통을 위해서는 방부제가 꼭 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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