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틀이 없다. 그리고 그 틀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든 사안을 단면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해석의 부재는 계속해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대중에 대한 생각 또한 그러할지 모르겠다.
대중. 군중. 민중. 공중 등등. 사회안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부르는 말은 다양하다. 그것은 그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중일수도 있다. 여기에 수나 양 외에는 그 어떠한 가치 판단도 들어있지 않다. 물론 그 가치를 맥락으로 체운다면 대중은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고 부정적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군중은 다르다. 군중은 대놓고 시민들을 까는 것이다. 선동되기 쉽고 이기적이며 한없이 무지한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군중이라 부른다. 반면 공중은 다르다. 공중은 공동체를 생각할 줄 알고 또 자신에게 어려운 선택을 할 수도 있는 발전된 형태의 집단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시민들의 모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공중인가, 대중인가, 민중인가, 아니면 군중인가. 아니면 이 모든 특성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여기에서 몇 가지의 특성만을 갖추고 있는가.
앞에서도 이야기 했다. 사고의 틀을 높이지 못하면 우리는 극단화 된다고. 우리는 과거 촛불시위로 인해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을 공중으로 계속 떠받들면서, 그 결과가 2019년 있었던 광장의 분열로 이어진 것을 잊어선 안된다. 그렇다고 우리는 시민들을 군중으러 폄하해서도 안된다. 그들은 언제나 시대의 질서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이며,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 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시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알고 있던 사실은 피상적인 것 하나다. 단정 짓지 말자. 즉, 대중에 대해서 군중으로 생각할지 민중으로 생각할지 공중으로 생각할지 등등. 어쩌면 회피의 수단을 생각의 수단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들었다. 어쩌면 과거에는 단순히 생각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썼다면,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시민들의 그룹에 대한 나의 생각이 이 책을 기점을 달라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이란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인가
“대중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어떤 핵심, 본질적이고 항상 동일한 어떤 특성과 마주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대중을 어떤 다른 대중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유사성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대중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는 서로 달느 여러 답변들이 나온다. 이 답변들은 제각각이라는 이유 때문에라도 이미 만족스럽지 않다. 이 질문ㅇ르 다르게 한다면 사정은 더 나아진다. ‘언제 우리는 대중이라고 말하는가?’ 1966년도의 대학생 대중을 설명할 때 우리는 시위대와 구경꾼들이 대중이라는 의식을 형성했던 한순간을 찾아냈다. 거기에는 어떤 힘을 가졌다는 감정이 결부되어 있다. 이 순간부터 시위대와 구경꾼들은 그 전에는 우연하다고 느꼈던 사회적 집합체를 ‘대중’이라 부른다.” -316pp
이 책은 학술서적이기에 다소 난해할 수 있다. 적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은 메터연구의 범주에 속하는 대중에 관한 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일반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316페이지의 사례와 같이 저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이 책에서 늘어놓았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단순히 간단명료한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생각을 자극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이 책을 읽었던 책을 읽으며 가장 머릿속을 많이 돌았던 책이 있다면 그것은 멜서스의 <인구론>이다. 이 책이 머릿속에 멤들았던 이유는 단순히 멜서스가 도시 하층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멜서스가 도시 하층민들을 마치 개돼지처럼 언급한 이유는 그가 해결해야 할 일 때문에 있었다. 과거 나향욱 씨처럼 민중을 개 돼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분명하게 그들이 몸담고 있는 일과 적지 않게 관련이 깊다. 어떤 특정한 모델을 만드는 게 그들의 역할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그러한 모델의 이용이 빈번하다. 즉, 수많은 사람들을 무재목매한 대중으로 인식하는 것의 뒤에는 정치적 역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고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대중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을 어떻게 인지할지에 대한 모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이 나에게 주는 것은 어떤 모델을 소거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모델을 생각의 틀 속에 넣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일방향적이지 않다. 즉, 저자가 대중을 정의하기 위해서 여러 사례들을 하나로 끌어 모아서 이에 맞추는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그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대중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우리에게 “대중은 이렇다”라고 이야기하기보다, 대중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면들을 시간과 공간 그리고 정치적 정동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서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대중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가변성의 문제와 예측불가능성의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다양한 해석의 틀을 보여줌으로서 이와 같은 불신을 없애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주는 통찰은?
혼란 스럽다. 그 혼란의 정도는 적지 않다.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사회를 움직이는 질서이기보다, 이념이 됐다. 그리고 과거 그리스를 멸망시키게 만들었던, 시민들은 슬슬 누구도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스스로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까지 무시할 수 있는 절대자로 자신들을 꾸미고 있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와 같은 모델 또한 배척한다. 즉 우리 스스로. ‘대중’이란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가 가능한데, 이를 현명하게 잘 풀어내서 우리 사회의 대중이 어떤 존재인지 사실적으로 규명한다. 유럽에서는 우파들에 의해서 극우정당들이 의회로 진출하는 상황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촛불혁명에 경도된 사람들에 의해 아직까지 혁명~을 외치며 대중에 의한 혼란의 정도가 적지 않다. 이 책은 대중의 하나인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대중으로 분류됐을 때, 나의 집단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책임있는 민주시민이라면 꼭 봐야 할 책이 아닐까.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