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권력자에 의해 쓰였을 때, 우리가 잊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디테일한 민중들의 이야기다. 권력에 의한 역사는 특정 사건에 대한 입체성을 제거한다. 그리고 오로지 권력이 바라봤을 때의 입체성만을 남겨둔다. 그것은 과거 빨갱이 몰이를 하면서 시민들을 겁박했던 산업화 세대나, 지금 권력을 잡아서 자신들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확대 및 유지하려는 민주화 세대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란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는 것인데, 오로지 이러한 것들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 권력자들에 의해 풀렸다는 식으로 둔갑한다. 그리고 그 이외의 사실들은 야사로 남아서 회자될 뿐, 튼튼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할 때, 시민들은 해당 사건의 입체성을 읽지 못하고,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로만 생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시리즈가 있다는 것은 나 또한 알았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롤 통해 한 번도 그 시리즈를 본 적이 없었다. 장항준이나 유명한 사람들을 초빙해서, 그냥 자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라 생각을 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별로였고, 그 플랫폼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이 책을 보게되니 세삼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옐로우 저널리즘 시대의 의미
옐로우 저널리즘 시대라고 불렸던 시기가 있었다. 시민들에게 기사를 하나라도 더 팔기위해서 시중의 자극적인 이야기들만을 골라내서 보도했던 시기. 우리사회에서는 그 당시를 암흑기라고만 생각을 하나 보다.
하지만 해당 시절에 대해서 다르게 보는 시선도 있다. 정파에만 매몰됐던 신문들이 자극적이더라도 사회의 소식을 전했기에, 민생의 문제들이 부각됐고, 이와 관련된 공론들이 모여서, 시민들이 정부를 압박했다는 것.
이번에 읽은 책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지나쳤던, 그리고 별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몇몇 사건들. 단순히 그런 것으로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을까. 그냥 재미있는 것으로 치부할만한 것들이었을까. 내 생각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배경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냥 상징적인 그 말을 통해서 그 말을 추측할 뿐이다. 휴거 사건은 어떠한가. 그냥 광신도들의 집단 광기라고 읽을 수 있는 사건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측면 말고 정말 다르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없을까. 그리고 지존파 사건은. 그냥 사람이 사람을 먹는 나쁜 사건에 불과했는가.
우리사회에서는 수많은 역사들이 거품처럼 만들어지고 또 터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의 이야기들을 잊는 동안, 우리는 역사의 다면성을 잃는다. 굳이, 권력이 나서지 않아도 시민사회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우리 스스로 시민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사건도 있다. 이번에 읽은 책 꼬꼬무는 다양한 층위에서 이와 같은 고민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