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꼬마선충. 이름만 들어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렇다. 이 책은 이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에 읽은 책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거야>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인지를 하더라도 절대 긍정적으로 보지 못했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지점은 과학적 사실은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이 일반적인 과학책이 아니라 에세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자가 문학에 빠졌을 때 나오는 결과물들을 좋아한다. 혹은 과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얼마전 읽었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학부에서부터 시작해 박사 그리고 현재까지 천문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랩이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으며 자식이 있는 과학자로서의 삶은 어떠한지,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다체롭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거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거야
염색체는 생물의 유전 정보인 DNA가 똘똘 뭉쳐 만들어진 막대 모양의 구조물이다. (…) 염색체의 진화는 다양한 형태로 일어날 수 있는데, 두 염색체가 합쳐져 한 개의 거대한 염색체로 바뀌는 일은 가장 극적인 사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은 아주 오래전에 염색체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염색체의 진화를 겪었다. 덕분에 사람은 가까운 유인원 친척들보다 염색체 개수가 1쌍이 적다. 이처럼 염색체의 결합이라는 진화 현상은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고작 염색체 하나가 더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조상이 침팬지나 오랑우탄의 조상과 갈라져 인간으로 나아간 중요한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쥐에서는 이렇게 염색체가 합쳐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사는 생쥐들 간에도 염색체 개수가 다른 경우가 있다. 태평양에 자리 잡은 작은 화산섬에 사는 생쥐들은 염색체 개수가 11쌍에서 20쌍까지 정말 다양하다. 연구실에서 키우는 생쥐들은 염색체가 모두 20쌍으로 일정한데, 이 화산섬에 사는 생쥐들은 염색체들이 저희들끼리 들러붙고 난리도 아니어서 급기야 11쌍까지 줄어들기도 한 것이다. 108 ~ 109pp
이 책은 다른 의미에서 <랩걸>과 비슷해 보인다. 랩걸 보다는 약간의 긴장감이 더해진 글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생물을 다루고, 그 안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의 패턴에 대해서 저자가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다. 아! 이것은 단순히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게다. 수학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엄청나게 너드처럼 생겼다든가,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세련되게 생겼다든가, 화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24시간 하얀색 코트를 입고 다닌다든가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모두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특정 사람들에 대한 소개와 임팩트는 필요한데, 다른 사안들을 통해서는 이것에 대한 임팩트와 소개를 주는데 한계가 있어 보이고 자신 또한 그것을 채울 역량이 없으니, 가장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들이 재생산돼 보여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생명과학자의 모습들은 그렇게 뻔하지 않다. 또한 우리가 알던 그 뻔하게 보이던 모습 밖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장균이란 녀석이 어떻게 충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 어떤 성취감에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아가 내가 공부를 하던 전기공학 실험실과 달리, 숨을쉬는 생명체들로 가득찬 그들의 랩이 어떤 분위기에서 운영되는지, 사람들간에는 어떤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가장 현실적인 연구직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책이다. 과거 생명과학 쪽으로 진로를 결정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해당 분야에 대해 입체적으로 알고 있지 못하니, 취업이 잘 되는 방향으로 인생의 경로를 설정했다. 물론 지금은 또 다른 길을 걷고는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는 내내 과연 단순히 교과서와 참고서라는 텍스트 안에서만 역동성을 느끼고 그 신비로움을 탐험했던 내가, 만약에 해당 분야로 진학을 했으면 어떤 다채로운 상황과 갈등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절대로 이번 생에서는 겪을 고민 그리고 갈등과 성취가 아니긴 하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김초엽 작가가 추천해서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잘 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