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어두운 방에서 검사는 컴퓨터로 검색을 시작한다. 지난 번에 봤던 공소장과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한 말에 각각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모두 사라진 상태다. 검사는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날씨를 검색해본다.
장면 둘. 용의자는 검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자신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나긋나긋한 말로 자신을 조여오는 것에 더 위압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또랑에서 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검사내전>에 있던 한 장면을 복기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추리소설이라고 하면은 뭔가 명탐정 코난 시리즈와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것들을 찾는다. 혹은, 뭔가 덕후라면은 고식(go sick)의 한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우리 사회에서 범인을 찾으려면 그 정도의 지혜가 필요할까. 그 정도의 추리 능력이 필요할까. 안타깝지만, 전직 검사셨던 김웅 의원은 이 같은 것에 반대한다. 자신이 형사부에 있었을 동안 잡았던 범인들도 그렇지 않았고 말이다.
사실 범인을 잡는다는 것은, 온전한 머리로 하는 영역이기보다, 수없는 시행착오에 의한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 또한, 김웅 검사는 해당 사건 해결을 화려한 추리로 하기 보다, 검퓨터로 검색을 해서 그 당시의 날씨와 범인이 밝힌 진술가운데 차이를 찾아낸 것이다. 범인은 명백하게 잘 못 진술을 한 것이고, 김웅 전 검사는 해당 사실을 범인의 잘못된 진술로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열쇠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들은 김웅 검사 앞에 날씨를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자 이렇다! 범인을 잡는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추적할 능력을 사회가 발휘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역량에 있다. 이 책 <애것서 크리스티 읽기>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이것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됐다.
범인의 살해 수법은 그 사회의 한계와 연동되는 법
사용하는 언어나 발음도 계급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였다. 영국에는 하류층이 자음을 잘 발음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다. 특히 그들이 성문폐쇄음(목구멍의 벽과 혀뿌리를 마찰해서 내는 소리)에서 ‘t’ 발음을 삼키거나 ‘h’ 발음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손수건(handkerchief)을 예로 들자면, 하류층은 ‘앵커치프’라고 하지만 상류층은 ‘핸ㅋ치ㅍ’라고 발음한다. 《푸른 열차의 죽음》에서 헬렌이 하녀 이름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말하며 바이너 양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h’ 발음을 잘할 수 있단다”라고 굳이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13장 계급 : 헬렌은 하녀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중에서
덕후들이 쓴 책은 언제나 재미있다. 비록 한 번도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하는 그 디테일함에는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초’덕후가 쓴 책이다. 셜록홈즈 덕후는 많이 봤어도,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처음 봤다. 하지만 이 책은 처덕처덕하고 기분나쁜 덕질이 아닌, 뭐랄까, 상큼한 지적인 덕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셜록홈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베이커 가를 묘사한다거나, 셜록홈즈의 복장을 모방하는 사람들은 적다. 또한, 셜록홈즈 책에 있는 내용을 통해서 게임을 만드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수준낮은 덕질과는 차별화 된 책이다.
이 책의 덕질은 한마디로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소설에서 인용됐던 시대가 어떤지에 대한 분석이다. 그 시대에 대한 분석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글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게 할 수 있는 덕질이다. 단순히 소비적인 덕질은 그 작품에 함몰되고 빠져들지만, 이 책의 덕질은 그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읽게 한다. 사람들이 그 당시에 사용했던 발에 대한 저자의 연구부터 시작해서, 그 시대에서 사용했던 도구, 그리고 그 시대의 풍속까지. 김웅 전 검사가 범인을 잡기 위해 현대의 문명을 활용했다면, 이 책은 그 당시 시대상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통해서 범인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고, 또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어떠한 한계의 극복과 가능성이 있는지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면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았다. 그리고 그 교훈을 알고 있다. 그 당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던 경찰관들이 미래가 그 범인을 잡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단서들을 남겼고, 미래는 기술을 통해서 범인을 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못 푸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 책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는 어떻게 보면 그 한계를 보여줄 수 있고, 그 한계 안에서 어디까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